Stunning flow

From The Yellow Room

2016. 11. 10. 00:00






















  요즘은 배달로 불가능한 일이 거의 없다. 음식. 옷. 생활용품. 심지어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것도 업체에 따로 전화를 해야 하는 일 없이 홈페이지에서 바로 신청이 가능하다. 굳이 누군가에게 본인을 노출하지 않고도 그것들을 얼마든지 손쉽게 집까지 오게 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또한 최소한 인터넷만 있다면 얼마든지 유지가 가능했다. 그들에게 나의 좋은 건 보여주고 치부는 감추고. 적당히 드러내고 가린다면 몇 가지의 모습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인맥을 연결할 수 있다. 물론 그 관계를 끊어내는 것 또한 마우스 클릭 한 두 번, 혹은 스마트 폰의 버튼 몇 개면 간단하게 끝이 난다. 쉽게 연결 되고 또 쉽게 차단된다. 이미 그런 게 너무도 익숙하고 편해진, 지금은 그런 시대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대에 아주 최적화된 인간형이었다.


  인터넷과 전화 몇 통이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집까지 배달되고 이메일 몇 통으로 일거리가 들어오며 또 그 일거리의 결과물을 다시 이메일로 전송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 그것 또한 핸드폰의 알람이 바로 알려주니 언제든 빠른 시간 내에 확인이 가능했다. 나는 지금의 이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고 어떠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나의 이러한 생활패턴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외출의 횟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 열흘에 한번. 그 다음엔 한 달에 두어 번. 그리고 이제는 몇 달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가끔 커튼을 걷었을 때 창문으로 간간히 들어오는 햇볕만이 내가 받는 유일한 온도이고 체온이었다. 나는 그게 전혀 이상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사람을 이유로 다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이보다 더 괜찮은 생활이 어디 있을까.


  매일 아침 여섯 시 경, 집 앞으로 신문과 우유가 배달된다. 신문은 요즘 인터넷만 접속하면 어떤 기사가 뜨거운 감자처럼 떠오르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우유도 쇼핑몰에서 주문할 수 있는데 웬 신문과 우유인가 싶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고백하자면 이건 순전히 다 이홍빈의 짓이다. 오랜 시간 집안에 틀어박힌 내가 아주 잠시나마 현관문을 열고 바깥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한 녀석 나름대로의 아주 깜찍한 발상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바깥으로 이끌어내고 싶은 녀석의 그 마음을 다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은 이해한다. 나는 형을 이리도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못된 형은 아닌지라 녀석의 뜻대로 매일 아침마다 이 귀찮은 짓을 나름 성실히 이행해주고 있다. 비록 신문은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재활용 쓰레기 박스로 던져지고 우유는 냉장고로 들어가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입구 한번 벌려보지 못하고 싱크대로 흘려보내지는 신세지만 말이다. 매일 집 안으로 제대로 잘 가지고 들어와 주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나는 할 만큼 했어. 그까짓 신문과 우유,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한번은 몹시 추웠던 겨울날, 나는 아주 잠깐 동안 여는 현관문 밖에서 들어오는 그 작은 바람조차도 싫어 며칠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문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신문들과 문고리에 걸린 파란색의 천주머니가 미어터지도록 수거해가지 않은 우유 때문에 아파트 복도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누구로 인해? 바로 이 모든 귀찮은 일을 벌인 장본인, 이홍빈으로 인해!


  그날따라 아직 해도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이홍빈이 어인일로 우리 집까지 행차하셨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녀석은 아침부터 이웃 주민들에게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뭐, 초인종 벨 연달아서 누르기. 주먹으로 현관문을 마구 두드리기.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는, 내 이름을 아파트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청껏 부르기. 사실 아파트에서는 이것들 중 하나만 해도 충분히 민폐이건만 이홍빈은 저것들 세 가지 다, 아주 그냥 쓰리 콤보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덕분에 젤리빌라 301호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 차학연 이라는 것은 같은 3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아니 3층뿐만 아니라 위아래 층까지 다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홍빈 목청이 좀 좋아야지. 내가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다 큰 남자가 혼자 사는 게 뭐 그리 불안해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나도 크게 한소리 해야겠다 싶어 아직 잠기운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느리게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홍빈의 얼굴이 너무도 참담해서 뭐라 불평할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분명 현관문의 문고리를 돌릴 때만 해도 아침부터 이 무슨 비상식적인 행동이냐고 따지려고 했었는데. 분명 그럴 참이었는데. 그러니까 그때 이홍빈의 얼굴이 어땠냐 하면. 어째서인지 녀석은 꼭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 있었고 낯빛은 굉장히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이홍빈은 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그대로 현관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오더니 내게 등을 보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녀석은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지 연신 씩씩거렸다. 나는 그 들썩거리는 널따란 등을 보고 있자니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고작 신문이랑 우유를 며 칠 동안 방치 한 게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녀석에게 뭔가 굉장히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까지 들어 괜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녀석은 여전히 흐트러진 숨만 가다듬을 뿐 그렇게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싶을 때쯤 그제야 코트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목이 조이는지 셔츠의 맨 위 단추 한 개를 풀고는 피곤한 듯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그리고 곧 평소와 다름없는 그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읊조리듯 내게 말했다.


  이홍빈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읽지도 않을 신문을 구독하는 것과 어차피 싱크대로 흘려보낼 것을 알면서도 우유를 배달시키는 것은 딱 검지손가락의 역할과 같다고 했다. 고요하게 잠이 든 그 사람의 숨이 제대로 잘 붙어 있는가, 코 밑으로 가만히 가져다댄 후 생사확인을 할 때 쓰이는 그 두 번째 손가락 말이다. 내가 그것을 귀찮아할 것도 알았고 그 잠깐 동안 현관문을 여는 것도 싫어서 며칠간 방치할 것이라는 것도 이미 예상을 했었지만 그렇게 우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끔 자기가 왔을 때 외에는 누구의 기척도, 체온도 존재하지 않을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잠들며 지난밤에 나는 안녕했는가, 아무 일 없이 잘 잤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밖에 전혀 나가지도 않고 쭉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형이 나는 항상 불안하고 걱정돼. 다 큰 남자가 혼자 사는 게 뭐 어떻다고 그 유난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그래. 진짜 마음 같아선 내가 형이랑 같이 살고 싶은데 형이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참는 거야. 신문이랑 우유는 내가 생각해도 좀 유치하긴 한데 단순한 형한테는 이런 일차원적인 방법이 더 낫겠더라고. 형이 귀찮아할 거라는 거 알았지만 일단 내가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장치 같은 게 필요했어. 그러니까 형 너도 내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이 행위에 협조 좀 해줘. 그리고 형 맨날 원고 메일로만 쓱 보내고 마는 거, 그게 얼마나 인정 없어 보이는 지 알아? 담당자가 이렇게 멀쩡하게 있는데.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직접 받으러 오는 거니까 좀, 나 좀 반겨줘라 좀.’


  이홍빈은 퍽이나 심각한 얼굴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조곤조곤하게 많은 말들을 나열하더니 결국 투정 어린 핀잔과 함께 이곳이 마치 자기 집인 냥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흑돼지, 일찍 일어난 김에 나 밥 좀 줘. 누구 때문에 아침부터 운전해서 여기까지 오느라 배고파 죽겠어.’


  이홍빈에게는 한 번도 말 한 적 없었지만, 녀석의 저런 한없이 풀어진 행동은 나에게 있어서 말하자면 어떠한 잠금 해제 장치 같은 거였다. 물론 이 사실은 앞으로도 이홍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뭔가 되게 좀, 부끄럽잖아.












From The Yellow Room

정택운

차학연













  낮잠을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현관문 아래 작은 신문 구멍에 동그랗게 말린 흰색 종이가 꽂아져 있는 게 눈의 띄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아마 아파트의 같은 동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곤 하는 반상회 모임을 알리는 안내문일 것이다. 불참하면 벌금 만원. 반상회라는 명분으로 모이지만 결국은 시시콜콜한 수다나 떠는 그런 자리일 것임이 분명했다. 원래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자연히 그렇게 되지 않나. 그런 곳에 내가 나갈 리 없었다. 아주머니들이 내게 동시다발적으로 던져대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질문들과 그 노골적인 시선들은 마치 내가 심문을 당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몇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오로지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이 내게는 생각보다 큰 고역이었다. 피할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만원은 무지 아깝지만.


  문득 처음 이 아파트에 이사를 왔을 때 이른 아침부터 벨을 누르고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어와 반상회에 참석할 것을 요구하던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어떠한 말도 없이 가타부타 열린 현관문 틈으로 몸부터 들이밀던 그 억척스러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기가 남자 혼자 사는 금녀의 구역이라는 건 알고나 있으신 걸까.


  내가 처음 집을 알아볼 때 복잡한 도심지를 약간 벗어나 있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성냥갑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아파트의 모양새 때문이었다.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이 좁은 고층건물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만큼 타인에게 무관심 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바로 이곳이 그런 모습일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집이라는 공간은 누구의 관심도, 간섭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들 또한 아무도 모르게 차곡차곡 보관할 수 있는, 그런 은밀한 곳이다. 그리고 이곳이 내게 그런 완벽한 집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내가 참 안일했지. 겪어보기도 전에 그렇게 쉽게 판단을 하다니. 대학교 때 잠깐 살았던 기숙사의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던 젊은 사감보다 이곳의 아주머니들이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


  나는 현관문 앞으로 느릿하게 걸어가 신문 구멍에서 안내문을 빼어들어 대충 반으로 접은 뒤 거실의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아주머니도 참. 이렇게 안내문을 받아봤자 한 번도 참석한적 없이 매달 벌금만 꼬박꼬박 내는데 이제 그만 포기하실 때도 됐건만. 나는 주인을 잃은 채 테이블에 가차 없이 버려져 머지않아 재활용 쓰레기로 전락하게 될 안내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다시 외면했다. 워낙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새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역시나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수요일이었나. 문득 아침에 오늘 잊지 말고 재활용 쓰레기 좀 꼭 밖에다 배출하라는 홍빈이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녀석이 집에 자주 오는 건 아니지만 가끔 원고를 받으러 올 겸, 내가 혼자 있어도 탈 없이 잘 있는 건가 감시도 할 겸, 그런 명분으로 한 번씩 들르곤 한다. 하지만 그냥 방문만 하고 그대로 조용히 돌아간다면 참 좋으련만. 마치 집주인이라도 된 듯 매번 잔소리를 해대니 그걸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하는 나는 영 피곤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잔소리가 제법 여러 층으로 쌓여있는 치킨 박스들을 보고 혀를 내두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형 너 정말 이러다 영양실조로 큰일 나는 수가 있어. 밥은 언제 먹었어? 아니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젠데? 야 흑돼지, 너 이렇게 막 살면 안 돼, 진짜. 이홍빈 특유의 그 톡 쏘는 말투와 나를 너무도 걱정하는 그 진지한 얼굴이 어찌나 웃기던지. 막 살기는 누가 막 산다고. 치킨 며칠 연속으로 먹은 걸로 별 호들갑은 참. 그래도 이렇게 잘생긴 얼굴이 나를 그런 표정으로 봐주니까 기분은 되게 좋다야. 낮잠도 잤고 그로 인해 에너지도 어느 정도 충전이 됐으니 오랜만에 바깥바람 좀 쐬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저녁 즈음에 내게 영상통화를 걸어 재활용 쓰레기를 제대로 버렸는지 기어이 확인하고야 말 이홍빈이 귀찮아서가 절대로 아니다.


  제법 높게 쌓아올려진 치킨 박스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정말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그런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해준 적이, 그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는 이내 떠올리기를 포기했다. 그런 건 아무렴 상관없고 또 기억이 났다한들 이제는 다 무의미한 것들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정말로.


  치킨 박스들과 함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배달되지만 단 한 장도 읽지 않은 채 그대로 재활용 쓰레기가 되는 신문이 든 박스까지 야무지게 들고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다. 약 일주일만의 나름 외출 아닌 외출이었다.














  사람도 식물과 똑같아서 아무리 집에서만 생활한다 해도 가끔 햇빛도 보고 바람도 쐬고 그래야 탈이 안 나는 거라던 홍빈이의 말을 나는 지금 조금은 공감했다. 너무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마셔서인지 아주 잠시 현기증이 일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그리고 순간 어째서인지 그렇게 막 살면 안 된다는 홍빈이의 잔소리가 환청 마냥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가 행여나 반상회의 참석을 목적으로 나를 부르는 아주머니들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아주 곤란한 일이 발생할 테니 서둘러 자리를 떠나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느긋하게 분리수거를 하던 내 손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신문까지 잘 처리한 후 손을 두어 번 탁탁 털고 막 자리를 뜨려고 했을 때 쯤. 나는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해 있는 놀이터에 초등학생 아이 한 명이 혼자 그네를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는 어림잡아 한 아홉 살 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이 아파트는 나름 신축건물에 속했고 치안도 괜찮은 편이다. 방범 CC 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육안으로도 잘 보였고 경비도 꽤 강화 되어있는 편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곧 저 어린 아이가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 혼자 있다고 해서 내가 딱히 걱정을 한다거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가 사는 층으로 올라가면 그만이었다. 정말 그러면 되는 건데.




“…….”




  나는 왜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저 아이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이가 보호자도 없이 저렇게 혼자 있다고 해도 내가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닌데. 그러니까 만약, 정말로 만약. 혼자 있는 저 아이가 누군가에게 유괴가 당한다거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텐데. 지금 왜 이렇게 심장이 너무도 크게 뛰고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나는지, 정말로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문득 주위를 크게 빙 둘러보았다.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의 특성상 지금은 평일의 이른 오후라서 그런지 밖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아직 퇴근시간도 아니라 주차장에 파킹 되어 있는 차도 얼마 없었다. 당장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주위는 너무도 조용했다.


  모래 바닥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그네를 타고 있는 걸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아직 퇴근 전인 부모님을 기다리는 걸까. 어쩌면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어 나와 같은 층에 누가 사는지 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저 아이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당연히 알 리 없었다. 자꾸만 입이 바싹 말라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내가 가보지 않아도 저 아이는, 괜찮을까. 나는 그렇게 얼마간을 나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인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 정적을 깨고 검은 세단 한 대가 엔진소리와 함께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식은땀까지 나게 하던 그 긴장감이 불안으로 탈바꿈 하는 데에는 정말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가야할까. 지금이라도.


  세단의 문이 열리고 젊은 남자 한 명이 내렸다. 남자는 주위를 한번 크게 둘러보더니 곧바로 놀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아이는 자신의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는지 그네에서 바로 내려와 남자를 향해 팔을 크게 벌리고 뛰어갔다. 아이를 가볍게 안아들고 아이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떼는 남자의 그 행동들을 나는 조용히 눈으로 좇았다. 그러고 나서 들었던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나는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저 아이를 보면서 어떤 상황을 생각했던 걸까. 무슨 일을 어떻게 부풀려 혼자 멋대로 상상하고 불안해한 것일까.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데.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지금 여기는 그때의 그곳이, 아닌데.


  내 일주일만의 외출 아닌 외출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은, 후회였다. 홍빈이의 기나긴 잔소리를 들을지언정 그냥 나오지 말걸 그랬다. 만약 지금 내게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온다면 역시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걸,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정말 하나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걸, 다시 한 번 뼈아프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러니까 저 아이와 얼추 비슷한 나이였을 아홉 살 때. 나는 누군가에게 유괴를 당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도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아직 회사에서 퇴근하지 않은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놀던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간 후라서 놀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 모래 바닥에 주저앉아 모래성을 쌓고 있는데 검은색 차 한 대가 내 근처로 조용히 멈춰 섰다. 거기에서 한 낯선 남자가 내려 나를 태우고 그대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아빠와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야. 오늘 아빠가 일이 많아서 집에 늦게 오신다고 혼자 있지 말고 아저씨랑 같이 있으라고 하셨어. 끝나면 바로 데리러 오시겠대. 그때 그 남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일말의 의심 한번 없이 그 차를 탄 걸까 싶었지만. 어렸으니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내가 처음 와보는 어느 낯선 동네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부터 멀리 벗어나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유괴범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욕실로 데려가 옷을 벗기더니 몸의 구석구석을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젖은 머리를 정성스레 말려주고 식탁에 저녁을 차려주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유괴범이 나를 데리고 마치 인형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나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그에 따르는 생각을 하는 것이 남들과는 조금, 그래 아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아저씨, 아빠는 언제 와요? 유괴범은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생선살을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유괴범은 말수가 지독히도 적었다. 그리고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표정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다. 나의 어떤 질문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어렸던 나는 그 침묵에 큰 불안함을 느꼈다. 그제야 그 낯선 공간이 숨이 막히기 시작했고 유괴범의 손길이 닿았었던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여전히 말이 없는 유괴범에게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아저씨…아저씨…!!’

‘얌전히 밥 다 먹으면 오실거야.’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밥은 모래알 같았고 생선은 비렸다. 그렇게 억지로 넘긴 음식을 나는 결국 모조리 다 토해내고 말았다. 유괴범은 화 한번 내지 않고 엉망이 된 내 옷을 벗기고 다시 씻기고, 또 다시 새 옷을 꺼내 입혔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아이였지만 유괴범의 그 행동들이 정상의 궤도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몸에 닿는 유괴범의 손길은 마치 뱀이 내 몸을 기어 다니며 유린하는 것처럼 너무도 소름끼치고 무서웠다. 나는 어째서인지 아무런 반항도,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잘 시간이야.’

‘아저씨 저 집에 갈래요! 집에 데려다 주세요! 집에 갈래요!!’


  나는 어떤 방에 갇혔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방이라기보다는 밀실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시계는 없었고 TV 또한 당연히 없었다. 가구라고는 낡은 싱글 침대 한 개 와 그와 가까이에 위치한 검은색 테이블이 전부였다. 오피스텔에 왜 이런 공간이 있는 걸까. 지금이 몇 시인지 내가 그곳으로 온지 얼마나 지난건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바깥과 연결 되는 장치라고는 침대의 반대편 벽 쪽에 높게 위치해 있는 작은 창문이 전부였다.


  유괴범은 불을 끄고 그대로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공간의 특성상 밖에서 문이 잠기는 구조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방문에 매달려 손에 멍이 들도록 문을 두드렸지만 한번 굳게 닫힌 문은 다시 열릴 줄 몰랐다. 동아줄 마냥 간절히 잡고 있던 문고리는 철컥철컥 쇳소리를 내며 헛돌았다. 유괴범의 발소리가 나를 가둔 밀실에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무릎을 접어 손으로 꼭 가둔 채 몸을 잔뜩 웅크렸다.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또래들에 비해 키도 덩치도 유난히 작았다. 키가 작았던 내게는 불을 켜는 스위치조차 너무도 높게 있어서 불도 맘대로 켤 수 없었다. 밀실은 어두웠고 오랫동안 환기를 시키지 않아 눅눅하고 퀴퀴했다. 그리고 마치 흑백 TV속의 공간처럼 삭막하고 아무런 색이 없었다. 높게 위치한 작은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와 침대 위에 드리워졌다. 그 빛바랜 노란색의 불빛만이 그 방에 존재하는 유일한 색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쨌든 나는 무사히 구조되었다. 오랫동안 젊은 남자 혼자서만 살았던 집에 최근 웬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와서 그에 이상함을 느낀 옆 집 주민이 신고를 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밀실에 갇힌 지 나흘이나 지났었다는 것은 구조가 된 후 경찰의 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경찰은 아주 간단한 진술만 하면 된다면서 서署로 같이 갈 것을 부탁했다. 간단한 진술이라니. 내가 집 앞에서 낯선 남자에게 유괴를 당해 어느 낯선 공간에 나흘씩이나 갇혀 있었던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닌데. 아직 몇 년 채 안 된 내 인생이 어쩌면 이제 곧 송두리 째 바뀔지도 모를, 그런 크나큰 사건인데. 그 이야기를 내가 처음으로 직접, 내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인데. 정말 경찰이 말하는 그 간단한 진술만으로도 모든 게 충분한 걸까. 순식간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경찰에게서 등을 보이고 돌아누워 눈을 꽉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들의 오랜 설득에도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었다. 어린 내가 최대한으로 표출할 수 있었던 명백한 거부 의사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갇혀있던 동안 한숨도 제대로 못 잤던 탓인지 소파에 앉자마자 병든 닭 마냥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마에 속절없이 꺾여 이내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방에 존재하고 있던 어떤 색들의 일부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무어라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만큼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 사건으로부터 얻은 것은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그리고 색맹이었다. 어린 나이에 유괴를 당한 아이에게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이 나타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색맹은 조금, 아니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아마 심리적인 부분이 크게 적용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빨간색과 파란색과 초록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날 삭막한 무채색의 공간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그 색. 사방이 막힌 어두운 밀실에 흘러 들어오던 희미한 가로등 불빛. 그 불빛을 꼭 닮은 노란색만큼은 어느 색보다도 선명하게 구분해냈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그냥 그 색마저도 내 눈에서 모조리 사라졌으면 했다. 아무런 색도 구별할 수 없는 완전한 무채색의 상태가 차라리 더 낫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정신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올라온 건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카디건을 벗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침대로 비척비척 걸어가 이불 안으로 몸을 깊숙이 숨겼다. 아직 식은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소매로 한번 훔치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흘려보냈다. 마치 안도의 한숨 같은, 그런 숨이었다.


  나는 이제 안전하다. 이곳은 안전하다. 이곳이 내게 가장, 안전하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그렇게 수도 없이 내게 주문을 외웠다. 여기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편집자랑 따로 통화하고 수정한 부분은 메일로 보내면 되는 거 아니야?”

― 이번에는 이것저것 조율할 게 많다고 회사로 와야 한대.

“…그냥 네가 집으로 오면 안 돼?”

― 난 형 담당자지 출판사 사장은 아니라 이건 내 권한 밖의 일이야. 그리고 형, 진짜 너무 그렇게 밖에 안 나가면 건강 안 좋아진다니까 그러네. 오랜만에 바깥바람 좀 쐰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와. 같이 점심이나 먹게.




  이번에도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뭘 또 출근까지 하래. 작가는 난데 왜 나한테 오라가라야. 한껏 투덜거리며 홍빈이와의 통화를 마쳤다. 침대에 드러누워 뒹굴 거리다 언제쯤 나가면 될까 시간을 계산했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적어도 점심시간 이전에는 출판사에 도착할 것이었다. 홍빈이의 말대로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그만인 외출에 에너지를 쓰는 것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아. 일어나기 싫다, 정말.


  내 직업은 소설 작가다. 주로 연애소설을 쓰고 가끔씩 월간지에 단편소설을 연재하기도 한다. 집 안에 틀어박혀 바깥세상을 멀리 하면서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히 잡생각이 많아진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내 삶을 송두리 채 헤집어 놓았던 그 날의 일들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마구 괴롭히곤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의 졸업식 날까지 나는 아빠의 차로 등하교를 했었다. 이젠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도 나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내 안에 머무르기를 원한 적 없었던 그 기억의 조각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튀어나와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생각과 행동에 공백이 생길 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어느새 스물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와 긴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기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출을 하고 들어온 날은 너무도 피곤했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했다. 나를 안전하게 품어주는 이 집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섞이는 것은 두려웠지만 늘 혼자 있는 것이 좋을 리는 없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그런 마음.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 틈이 생길 때마다 기록했던 나의 이야기를 나만이 아는 내 집이 아닌, 세상 밖으로 꺼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의 출판사 사장님은 그런 내 손을 잡아주신 분이었다.


‘전 출근은 못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작가님은 번거롭게 회사까지 나올 필요는 없어요. 이곳에 나오는 사람은 당신이 쓴 글들을 매끄럽게 다듬고 출판하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렇게 말해줘서 진심으로 기뻤다. 사실 아직 사무실이 그리 크지가 않아서 원래 있는 직원들만으로도 벅찬데요, 뭘. 내가 미안해 할까봐 그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면서 말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한 번씩 나를 회사로 부를 때마다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미 그에게 차고 넘칠 만큼의 배려를 받았고 지금 또한 그러고 있으니까. 대신 출근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내 원고를 담당하는 사람을 한 명 붙여주었다. 그게 홍빈이었다. 


  홍빈이는 내 담당자가 된 첫 날부터, 작가님 집으로 원고 받으러 직접 가도 돼요? 라고 말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사장님께 들은 바로는 홍빈이는 다름 아닌 사장님의 사촌동생이라고 했다. 이재환. 이홍빈. 그냥 성이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혈육관계였을 줄이야. 작가님, 이런 거 말고 밥을 먹어요, 밥을. 사람이 어떻게 밥을 안 먹고 살아요. 정 나가는 게 싫으시면 현관문이라도 잠깐 열어서 바깥 공기 좀 마셔요. 이러다 작가님 몸에 이끼 생기겠네. 생각해보니 홍빈이는 처음 이곳에 왔던 그 날에도 잔소리가 심했던 것 같다. 역시 그때 담당자를 바꿨어야 했는데.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전혀 없었지만 내게 담당자라는 것이 생긴 후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내 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방문자가 생겼다. 방문의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했고 참 쓸데없었다. 어떤 날은 혼자 밥 먹기 싫다고. 또 어떤 날은 날씨가 너무 좋은데 딱히 갈 데가 없다고. 또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한데 집까지 운전 할 힘이 없다고. 웃기시네. 출판사에서는 여기보다 너희 동네가 훨씬 더 가깝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혼자 지내는 것에 너무도 익숙했던 내게 그 막무가내한 방문자가 어색하고 불편했던 시간은 처음 집에서 마주한 날의 딱 그 몇 십분 정도가 고작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겨울 참이었는데 잘 됐지 뭐. 그리고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한다면 연락을 했을 때 바로 와줄 수 있는 사람 또한 결국은 홍빈이 뿐인 것이다.


  홍빈이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를 아는 두 번째 사람이다. 첫 번째는 가족. 그리고 현재 내 집의 유일한 방문자, 이홍빈. 동생이 없는 내게 녀석은 정말 어떨 때는 친동생이 있다면 딱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친밀했다. 글 쓰는 걸 그만두지 않고 다시 어둡고 추운 심해로 숨어들지 않은 것도 아마 모두 다 녀석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녀석에게 늘 고마워하고 있지만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원래 사람과의 관계는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지만, 내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녀석은 내 마음 다 알거라 생각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해야겠다. 홍빈이 말대로 내 몸에 이끼가 자라기 전에 햇빛 좀 받게 해줘야지. 뒹굴 거리던 침대에서 일어나 속옷을 챙겨 욕실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나가기 싫어하던 집 밖인데도.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게 조금은 들떴다. 별 일이다, 참.














…설마 이걸 노렸던 건가.


  오랜만에 나온 밖은 조금 쌀쌀했지만 잠깐 동안 걷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거리에 사람도 많지 않았고 도로도 혼잡하지도 않아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래서 택시가 아닌 버스를 한번 타볼까, 그런 결심을 했던 터였다. 비록 그 결심은 내 담당자 녀석의 카톡 메시지 하나로 금방 의욕을 잃고 푹 가라앉아버렸지만 말이다.


‘형, 오는 길에 형 집 근처에 있는 수제화 매장에서 신발 좀 찾아다 줘. 그거 작은 누나 생일선물이라 오늘 찾으러 가야하는데 형이 오는 길에 좀 가져다줘. 차 작가님 부탁해!’


  얼씨구. 아주 그냥 발랄하게 느낌표까지 붙이셨다. 그러고 보니 직원도 아닌 작가를, 웬만하면 회사로 부르는 일이 아주 드문 사장님이 웬일로 나를 호출했을까 했었는데. 사실은 나를 이렇게 집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이홍빈과의 작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 심부름은 덤이고. 노렸네, 노렸어. 이 망할 놈의 이씨 형제. 약간의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나름 공들여 준비한 시간이 조금 아까웠다. 그리고 점심시간도 가까워지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 먹기 싫기도 했고.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되돌려 홍빈이가 카톡으로 찍어준 가게 상호 명을 중얼거리며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나온 외출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과는 고작 몇 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게들이 여럿 보였다. 뭔가 낯선 동네로 흘러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춰 줄줄이 들어서 있는 가게들을 더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기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상호명과 함께 위치까지 나름 자세히 알려줬건만, 그 지독한 길치가 어디 갈까 싶다. 더군다나 통 모르는 가게들 사이에 있어서인지 이젠 길을 잃은 기분마저 들었다. 고작 집 앞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라니. 더 해매기 전에 전화라도 걸어봐야 할까 싶어 핸드폰을 꺼내던 중 나는 횡단보도 맞은편 너머로 홍빈이가 알려줬던 상호명과 동일한 가게를 발견했다. 아. 드디어 살았다.


  출판사와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거의 전화나 이메일을 사용한다. 무언가를 배달시킬 때도 요즘은 통화 없이 스마트폰 어플 하나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말하자면 내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몇 년간 가족과 출판사 사람 몇 명만이 거의 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낯선 사람과 대면을 해야 하는 지금의 이 상황이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긴장이 됐다. 조금 굳어진 얼굴을 애써 풀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어 벨이 울렸다. 가게 안은 의외로 한산했다. 사람이 많았다면 조금은 고역이었을 뻔 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탁 트인 넓은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쇼윈도에 진열된 큐빅이 박힌 구두들이 너무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모던해 보였던 밖의 모습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였다. 수제화 라더니. 구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그것들은 제법 고급스러워 보였다. 어느 드라마에 그런 대사가 있다. 항상 좋은 구두를 신어야해. 좋은 구두는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니까. 수제화 라고 했으니 디자이너가 직접 사이즈도 재고 발본도 뜨고, 그렇게 하나하나 직접 다 하겠구나. 자신이 만든 구두를 예쁘게 신은 그 사람이 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그렇게 제작하겠지.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온 후 수많은 구두들이 진열된 쇼윈도의 그 화려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조금 멍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곧 직원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내게 가까이 걸어와 말을 걸었다.




“선물 하실 건가요? 원하시는 디자인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어 그러니까, 동생이 여기에서 구두를 주문한 게 있다고 해서 대신 찾으러 왔어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버벅거리기나 하고.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화라고 하기에도 뭐한 이 짧은 말들을 하면서도 그러는 건 좀 너무하잖아. 나를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 이런 심부름이나 하게 만든 이씨 형제를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면서 빨리 주문한 구두를 찾아 여기를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홍빈이의 이름을 말하고 직원이 주문한 구두를 찾으러 간 사이 나는 다시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런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문득 그런 궁금함이 고개를 들었다. 분명 아주 섬세하고 세심한 그런 완벽주의자이지 않을까. 구두만 찾으면 바로 나갈 거였기 때문에 의자에 앉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매장의 한쪽 공간에서 한 여자 손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의자에 앉은 여자 손님의 가느다란 발목에 줄자를 둘러 사이즈를 잰 뒤 바닥에 곱게 깔아놓은 종이에 발을 딛게 해 발본을 그렸다. 조심스레 발목을 쥔 그 하얀 손끝이 제법 섬세해 보였다. 발본 스케치를 마친 남자가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




  하얀 얼굴에 섬세한 손끝을 가진 젊은 남자.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머릿속에서 희미한 잔상으로만 맴도는 그것이 도저히 시원스럽게 떠오르지는 않아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중, 나는 곧 그가 며칠 전 내가 분리수거를 하러 나왔다가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안아 올려 볼에 입을 맞추던 그 남자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따지고 보면 내게는 저 남자가 나름 구면인 셈이었다. 물론 저 남자는 나를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아들이 있었나보다. 아닌가, 조카인가. 분명 낯선 사람이 맞는데 그래도 한번 본 적이 있다고 희한하게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직원은 홍빈이가 주문한 구두를 박스에 잘 넣은 뒤 상호명이 깔끔하게 새겨진 흰 종이 백에 담아서 내게 건네주었다. 내 시선이 아직 그 젊은 남자에게 닿아있는 것을 본 직원은 그 남자를 이 구두들을 만든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꽤 젊으셔서 놀라시는 손님들 꽤 많아요. 근데 저렇게 젊어보이셔도 이 업계에서는 꽤 실력 있기로 유명한 분이세요. 나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손님에게 샘플로 이것저것 보여주던 구두들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남자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열된 구두들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남자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것은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악몽에 발목을 붙잡혀 나약하게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생각의 틈을 메우듯 미친 듯이 글을 쓰고 그것으로 소설작가가 된 나와는 본질부터가 다른, 그런 이의 얼굴이었다. 가게는 화려했고 직원들은 친절했고 구두는 고급스러웠다. 그리고 그 구두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빛이 났다. 이곳에 전혀 섞이지 못하고 마치 이방인처럼 떠도는 존재는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조화될 수 없었던, 나와는 정 반대의 것들은 여전히 빛이 났고 아름다웠다. 


  상호 명의 로고가 각인된 흰색 종이 백의 아래쪽에는 작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디자이너 정택운. 섬세한 듯 단단해 보이던 그 외형과 꼭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마지막까지 친절한 직원들의 인사를 뒤로 한 채 나는 가게를 나왔다. 오직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나의 안전한 요새를 빠져나와 마주한 낯설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묘하게 위축시켰다. 나를 항상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생각했던 내 집이, 사실은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나도 저렇게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택시를 잡으려 도로변으로 걷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아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만약 그날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 째 뒤바뀌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저렇게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거야.


  멀리서 오는 택시를 잡으려 손을 흔들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얼른 홍빈이한테 가야겠다. 흔들리며 움직거리는 것은 내 팔 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넓고 황량한 바다를 떠도는 부표처럼 출저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유 모를 외로움과 공허함은 내 오랜 습관처럼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것들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역시 그런 거겠지. 아마도, 그런 걸 거다.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았어도 유난히 피곤한 날이 있다. 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으면 몰려오는 수마를 어찌하지 못하고 머리까지 떨어뜨릴 정도로 졸게 되는 그런 날 말이다. 내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초저녁부터 계속 졸리더니 급기야 9시가 넘으니 소파에 그대로 드러누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밤을 새야하는 상황이지만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소파에서 엎드린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검은 가죽소파는 워낙 낡아서 조금만 오래 누워 있어도 허리가 아팠지만 하염없이 쏟아지는 잠에 치여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 시간만. 딱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나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소나기인가. 이제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갑자기 웬 비인가 싶었다. 엎드린 채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잔 탓에 온 몸이 뻐근했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훌쩍 넘긴 늦은 밤이었다. 봐주는 이 하나 없어 혼자서만 열심히 떠드는 TV 소리는 적적한 거실을 공기처럼 배회했다. 


  마감이 가까워지면 홍빈이는 이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그래서 이 집 안의 곳곳에는 녀석의 물건이 알게 모르게 꽤 많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저 현관 앞에 놓여있는 검은색 슬리퍼. 저 슬리퍼는 마감이 다가오면 작은 발걸음 소리에도 잔뜩 예민해지는 나를 배려해 녀석이 사다놓은 것이다. 나 거실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듣기 좋은 중저음의 그 목소리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는 순간까지도 나를 챙겼다. 원고야 그냥 메일로 보내도 그만인 것을 매번 불청객을 자처 하는 게 아주 가끔은 좀 귀찮기도 했지만 덕분에 마감 시간은 잘 맞출 수 있어서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여겼다. 그러니까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느냐면. 지금 이 시기 정도면 거실에 나가면 당연히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어야 할 녀석인데 오늘 하루 종일 연락 한통도 없는 게 조금은 의아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배가 고팠다. 냉장고에 먹을 만한 게 뭐가 있더라. 마지막으로 식재료를 주문한 날이 언제였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건너갔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내 수준에 맞춰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의 레시피가 적힌 포스트잇 몇 장이 냉장고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언제 해놓고 간 거야. 홍빈이는 진심으로 내가 밥을 굶을까봐 걱정인가보다. 나름 잘 챙겨먹는다고 생각하는데. 배가 많이 고파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간단한 야식을 만들어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으면서 그제야 여전히 혼자 떠들고 있는 TV에게 관심을 두었다. 심야 뉴스였다.


  경찰들은 요즘 1인 가구의 집만을 골라서 턴다는 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단순 절도만으로 뉴스에 보도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그 도둑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절도범에서 살인범이 된 것이다. 도둑은 그 집에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미리 파악했고 집이 비는 시간을 골라 침입했다. 하지만 그 시각 여자는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도둑은 이 사실을 몰랐다. 여자는 유난히 잠귀가 밝아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곧 집 안에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몰래 신고하려고 했지만 이를 발견한 도둑은 여자를 바로 힘으로 제압했다. 도둑은 크게 저항을 하며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얼굴을 침대의 머리맡에 자리하고 있던 큰 쿠션으로 막고 그대로 내리 눌렀다. 여자의 사인은 비구 폐쇄성 질식사. 그 크나큰 쿠션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대로 힘을 가해 눌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살고자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면서 이불을 마구 쥐어뜯던 손은 손톱까지 부러져 피가 많이 났다. 그 모습만으로도 여자의 마지막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도둑이, 아니 살인범이 굳이 혼자 사는 집을 고른 이유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어도 그 집은 1인 가구이기 때문에 현장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보통의 가정집보다 훨씬 늦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뉴스는 군데군데 모자이크 처리가 된 크라임씬을 꽤 오랫동안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치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그 정황들을 추리하고 증거를 수집해 범인을 잡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곳이 하필 우리 동네와도 제법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찜찜했지만 설마 나처럼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무슨 일이야 일어날까 싶었다. 살인범이 그 여자를 죽인 건 여자가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저항을 한다 해도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제압이 가능한, 다름 아닌 여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 집의 주인이 180센티 이상의 건장한 남자였어도 그렇게 살인 피해자가 되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나는 참을 수 없이 씁쓸해졌다.


  자정이 지나서야 뉴스는 끝이 났다. 1년 365일 중 아마 약 300일 정도는 집에 있을 나는 방금 전까지도 뉴스에서 보도된 저 살인사건이 어쩐지 내가 있는 지금 이곳과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건 내가 가끔이나마 뉴스를 볼 때마다 들곤 하는 기분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집 밖에서 일어나는 그저 남의 일들. 그래서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와 꽤 가까운 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 살인범은 아직 검거되지 않았지만 만약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다음 사건의 타겟이 설마 내가 될 리는 없을 거라고, 그렇게 함부로 단정 지었다.


  잠도 충분히 잤고 야식도 먹었으니 이제는 아직 끝내지 못한 원고에 전념해야 할 시간이다. 핫초코를 가득 담은 머그잔을 들고 노트북이 있는 방으로 건너가려 천천히 발을 땠다. 집 안이 너무 조용한 것도 별로라 TV는 그대로 켜두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현관문 밖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방금 뉴스에서 그런 사건을 봤기 때문일까. 어째서인지 문고리를 돌리는 그 작은 소리가 순간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이곳을 드나드는 이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홍빈이 뿐이다. 그리고 홍빈이는 집 안에 들어올 때 거의 벨을 누르거나 아니면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 이미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알아서 들어온다. 그러니까 그 말은 즉, 내게 아무런 어필도 없이 저렇게 문 밖에서 그저 조용히 문고리만 돌리는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같은 동의 아주머니들조차도 벨을 누르거나 아니면 문을 두드리시니 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거실을 벗어나려 했던 내 두 발은 누군가 꽁꽁 묶어놓기라도 한 듯 더 이상 움직여지질 않았다. 살짝 열어놓은 베란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축축한 비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내 팔에 작은 소름을 일으켰다. 반쯤 걷어진 크림색 커튼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 순간, 왜였을까. 우연히 보게 된 심야 뉴스에서 급박하게 보도되던 그 살인사건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나는 소설작가다. 그 말은 즉 적어도 보통 사람들 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조금 더 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처럼 현재의 상황을 약간의 상상을 더해 더 크게 부풀려 생각하는 것은 어찌 말하면 오랜 직업병 같은 거였다. 최근 살인사건이 우리 동네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고 살인범은 아직 검거되지 않았지만 지금 현관문 밖의 저 소리가 그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것은 어쩌면 나의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다른 층에 사는 사람이 술에 취해 집을 잘못 찾은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나처럼 길을 지지리도 못 찾는 그런 길치가 몇 호인지를 헷갈렸을 수도 있고. 그러니 지금처럼 섣부르게 생각을 멋대로 부풀려 나 혼자 마음 졸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깊게 숨을 한번 들이켠 다음 천천히 내 쉬었다.


  하지만 사람이 생각했던 그대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로는 분명 별일 아닐 거라고 여겼지만 몸은 그게 아니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세게 뛰었다. 그 심박이 너무도 크고 빨라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기분 나쁜 불안감은 내가 살아오면서 언젠가 한번은 느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내 유년 시절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던, 내가 유괴를 당했던 그날. 유괴범의 손에 이끌려 어느 낯선 집 안에 막 발을 들였을 때 어렴풋이 느꼈었던 그 감정의 성질과 아주 흡사했다. 때로는 머리보다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더 정확하게 들어맞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계속해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 몸을 애써 외면하려 하고 있었다. 그 똑같은 악몽을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이곳은 성역 같은 곳이다. 그러니 나를 해하려는 존재라면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문고리가 철컥거리는 소리가 사라지자 이제는 도어락을 열어 비밀번호를 천천히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이어 비밀번호가 틀렸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 여러 차례 들렸다. 이곳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가족들과 홍빈이라면 절대 그 숫자를 틀릴 리 없다. 뭔가를 잘 잊어버리는 나 때문에 최대한 기억하기 쉬운 숫자인 내 생일로 설정이 되어있으니 사리분별이 어려울 정도로 이성이 날아간 상태가 아닌 이상 그걸 까먹을 리 없다. 작게 일으켰던 소름은 이제 나를 그대로 송두리째 집어 삼켰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고 온 몸이 시시나무 떨 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문 밖의 의문의 존재는 비밀번호가 자꾸 틀리자 이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한 모양인지 한참동안 기척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 여전히 문 앞에 서 있겠거니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느새 내 호흡은 마치 과 호흡처럼 짧게 끊어진 상태로 아주 불안하게 이어졌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움직여 거실을 벗어나 그대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이곳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요새가 아니었다. 핸드폰이 어디에 있더라. 거실에 뒀나. 서재에 놓고 왔나. 아님 주방에? 머릿속은 마치 이제 막 리셋 작업을 마친 안드로이드 마냥 완전한 백지 상태였다. 지금의 내 모습이야말로 좁고 어두운 밀실에 홀로 갇힌 채 구조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를 죽일까. 당시 머리맡에 있던 파란색 쿠션으로 숨이 드나드는 코와 입을 억지로 틀어막아 고통 속에서 서서히 숨을 꺼뜨렸을 그 여자처럼. 나도 그렇게 죽일까. 아니, 나는 아무래도 저항을 더 거세게 할 수 있는 남자니까 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수도 있겠다. 지금이라도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서 도와달라고 소리라도 질러야할까. 그럼 적어도 누군가 신고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아무런 연락을 취할 수도, 기다릴 수 있는 연락조차도 지금의 나에게는 없었다. 그저 마감 직전의 내 컨디션을 걱정한 홍빈이가 어서 와주길 바라는 수밖에. 정말 그것 밖에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야 신고를 하든 정말로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든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는 머리와는 달리 몸은 침대 밖으로 벗어나길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문을 따고 침입에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한 번에 바로 찾을 수는 없을 옷장 같은 곳에 숨어야 할까, 겨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초인종 벨소리가 울렸다. 문 밖의 존재는 내가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세게 닫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 아마도 이 집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진작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종을 눌렀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와 나를 반드시 해하겠다는 뜻일까. 나는 머리 위까지 올려 덮은 이불 속에서 베개를 마치 목숨 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꽉 틀어쥐고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누구든 제발, 제발 나를 좀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진작 일어났을 만큼 시간은 흘러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스스로 인지한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순간 이곳의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이불을 걷어내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개죽음 당하는 것 보다는 뭐라도 좋으니 작은 발버둥이라도 쳐 봐야했다. 천천히 이불을 내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아직은 단단히 잘 잠겨있는 방문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홉 살의 그 어느 날. 어린 나를 유괴해 가두고 굳게 닫아버린 밀실의 문. 도저히 잊혀 지지도, 지워 지지도 않은 채 마치 귀신처럼 끔찍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그 날의 기억의 잔상. 이제 제발 그만 하고 싶다. 19년 동안 붙들고 있었으면 됐잖아. 그 정도 괴롭혔으면, 이제 정말 충분한 거잖아.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섰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문고리 위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나는 아마도 달라질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적어도 손톱이 깨져 피가 나도록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누군가로부터 구조를 바라던 그 아홉 살의 어린 차학연 보다는 뭐가 나아도 더 낫겠지. 수전증 마냥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세게 한번 꾹 쥐고는 그대로 살짝 돌렸다. 딸깍,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에 침을 한번 삼켰다. 방문이 삐걱거리며 아주 느리게 열렸다. 거실의 모습이 내가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기 전과 다르지 않은 걸 보니 아직 문 밖의 존재는 집 안까지의 진입은 실패한 모양이다. TV가 켜져 있는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이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숨이 막히도록 집 안을 점령해 버렸을 고요에 내 숨이 먼저 막혔을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거실을 통째로 뒤흔들던 초인종 벨소리는 어째서인지 한참동안 잠잠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폭풍전야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또 다시 불안감으로 거세게 뛰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는 가슴의 왼쪽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거실을 크게 빙 둘러보았다. 핸드폰. 핸드폰을 찾아야 한다. 


  조심스레 옮기는 그 작은 발소리조차 문 밖으로 새어나가 자칫 내 존재가 들통이 날까 두려웠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들을 최대한으로 차단한 채 부지런히 거실을 살폈다. 그 짧은 몇 분이 마치 억겁이 시간처럼 너무도 길고 암담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초인종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내내 집 안을 유령처럼 떠돌던 불안한 공기의 흐름을 단번에 찢어버리고 갑작스레 끼어든 그 날카로운 소음은 나를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호흡으로 겨우 숨을 몰아쉬는 내 모습이 마치 물 밖으로 억지로 건져 올려 져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아가미를 움직거리는 물고기 같았다. 잔뜩 굳어버린 몸을 무거운 짐짝을 옮기듯 억지로 이끌어 간신히 커튼 뒤에 숨겼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무려 19년 동안 나를 지겹게 따라다니던 그 잔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질리 없는데.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은 어쩌면 내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이 제발 어서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또 바랐다. 다시 초인종 벨소리가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저기, 안에 계세요? 밖에 무슨 소리가 나서 나와 봤는데요. 별 일 없으시죠?”




  그리고 무슨 영문인건지, 밖에서는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밖의 그 존재는 계속 내 숨통을 바짝 조이더니 이제 회유의 방법으로 작전을 바꾼 걸까. 그렇게 해서 내 경계심을 무너뜨려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이렇게 목소리까지 들려주는 걸까. 아니면 정말 옆집에 사는 사람일까. 나를 이 수렁 속에서 구해 줄 동아줄일까. 아니면 내 경계심의 껍질을 벗기고 나를 해하려는 짐승일까. 똑똑똑, 몇 번의 노크와 함께 내 안위를 묻는 이 남자를, 나는 정말 믿어도 괜찮은 걸까.




“아, 혹시 오해하실 지도 몰라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아까부터 밖에서 누군가 비밀번호를 계속 틀리 길래 처음에는 집을 잘못 찾았나보다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그러고도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거리 길래 이상해서 계속 지켜봤어요. 많이 놀라셨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남자는 두꺼운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저 남자가 정말로 나를 해하려는 짐승인거라면, 나는 지금 당신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으니 적어도 그 여자처럼은 나를 쉽게 어쩌지는 못하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현재 극한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실감하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생기는 걸까. 나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한 채 홀리듯이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채로 현관문을 아주 조금만 열었다. 겨우 팔 한개 정도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좁은 틈으로 그 낯선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깨끗하고 하얀 피부. 가로로 길게 째진 눈매 때문인지 서늘해 보이는 인상. 180센티는 가볍게 훌쩍 넘기는지 나와의 눈높이가 조금 더 위에 자리한 큰 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미지였다. 분명 미성이었는데. 그리고 그 남자는, 며칠 전 홍빈이가 작은누나의 선물로 주문했던 수제화 가게의 디자이너였다.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자 나는 곧 구두가 든 하얀 종이 백에 새겨져 있던 디자이너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이름이, 정택운이었던가.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 사람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니.




“…괜찮으세요?”

“…….”

“지금 안색 엄청 안 좋아 보이시는데.”

“…….”

“지금 이 타이밍에 해도 될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아까 문 밖에 있던 수상한 그 사람, 아직 완전히 안 간 것 같아요. 제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와서 잠깐 어딘가로 피한 것 같기는 한데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그,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오지랖이라고 생각하셔도 할 말은 없는데요. 완전히 갈 때까지 우리 집에 가 있을래요? 바로 옆집이니까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집으로 돌아가셔도 되고요.”




  더 이상은 내게 안전한 요람이 아닌 이 공간에 계속 혼자 있어야 하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이 또 있을까. 혼자 있기 싫었다. 지금은 누구든 좋으니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너무 고마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슨 근거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는 이 옆집 남자라는 사람을 한번 믿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팔 한 개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던 틈을 조금 더 벌려 남자의 모습이 내 눈에 완전히 보이도록 했다. 지금 내가 잡는 이 손이 제발 나를 구해줄 튼튼한 동아줄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옆집 남자를 따라 집을 나서기 전, 여전히 혼자 켜져 있는 TV와 무슨 일이 일어났었냐는 듯 평화롭기만 한 거실을 한번 돌아보았다. 분명 몇 시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이제는 절대 똑같을 수가 없는 풍경들. 그 익숙하고도 불안한 모습들이 내 눈 속에 마치 파편처럼 박혔다. 어쩐지,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옆 집 남자를, 아니 정택운씨를 따라간 집은 정말 내가 사는 곳의 바로 옆 호였다. 약 네발자국 정도만 가면 현관문 앞에 닿는 그런 아주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나는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오늘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가 우리 집으로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앞으로도 그를 모르지 않았을까. 정택운씨가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뒷모습을 나는 한발자국 쯤 떨어진 거리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두어 번 봤다고 해도 엄연히 낯선 사람인데 이렇게 막 집까지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의심은 끝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들어와요.”

“…….”

“바로 옆집이기는 해도 나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고. 근데 이 야밤에 처음 보는 사람의 집까지 왔고. 지금 뭔가 굉장히 얼떨떨할 거라는 거 이해해요. 근데 거기에 계속 혼자 두는 건 내가 도저히 마음에 걸려서 안 될 것 같아요.”

“......”

“오래 있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지금 그런 차림으로는 추우니까 일단 들어와요.”




  정택운씨의 말에 그제야 내려다 본 내 차림은 누가 봐도 집에서 막 나온 옷이라 얇고 가벼웠다. 거기다 그의 말대로 최근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더니 밤이 되면 쌀쌀해졌고 더군다나 오늘은 비까지 내려서 조금 춥기까지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용기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애초부터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옆집이기는 해도 엄연히 낯선 사람인데 그걸 알면서도 따라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낯선 사람을 따라 집 밖을 나왔다.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닫았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해서 그런 건가. 미성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는 것이 묘하게 상대를 설득시키는 데에 아주 능해 보였다. 정택운씨의 조근 조근한 말은 내 안에 무수한 가지를 뻗고 있던 의심과 경계심을 조금은 수그러들도록 만들었다. 집 안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아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거실과 소파에 장난감과 스케치북 같은 것들이 널려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크레파스로 낙서한 흔적들도 보였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집은 아마 이런 느낌일까. 늘 집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라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조금 서늘한 감이 있던 우리 집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소파에 있는 스케치북을 한 쪽으로 잘 치워두고 가장자리쯤에 앉았다. 정택운씨는 곧 주방에서 머그컵을 하나 들고 내가 앉아있는 거실로 천천히 걸어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소파에 앉았다.




“핫초코에요. 지금은 이게 가장 필요해 보여서요.”

“감사 합니다….”




  그는 아직까지 하얗게 질려있는 내 안색을 많이 걱정하는 듯 했다. 원래 이렇게 친절한 사람인걸까. 내가 아무리 위험에 처해있었다 해도 나는 그에게 처음 보는 사람일 텐데. 이렇게 막 집 안까지 들여도 괜찮은 걸까.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들여도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 하셨죠?”




  …독심술까지 쓰는 건가. 그는 정곡을 찔린 내 얼굴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은근하게 웃었다. 




“그냥.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근데 원래 이런 고층 아파트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타인에게 무관심 하다는 말을 들어서 아 저 집도 그런 거구나, 했죠.”

“......”

“근데 따지고 보면 나도 똑같았죠, 뭐. 오늘 이런 일 생긴 거 보고 내가 쫌만 더 빨리 나와 볼 걸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아니에요.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경비 아저씨한테 말은 해뒀어요. 이건 엄연히 이 아파트의 보안 문제이기도 하니까 아마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정택운씨는 이사를 온지 한 달이 넘었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여유가 없어서 사실 오늘 옆 집 사람을 처음 본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사는 것을 알고 나니 뭔가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쭉 아주머니들이랑 어르신 분들만 봐서 좀 심심했거든요. 묘하게 들떠 보이는 그 아이 같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는 거기에 대고 내가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질 않아서 우리는 한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거라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정택운씨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렇게 대화까지 한 것은 분명 오늘이 처음인데도 어째서인지 나는 그가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처럼 묘하게 편안했다. 그의 말처럼 동갑내기로 보이는 사람을 만난 게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소나기인줄 알았던 가을비는 아직 계속 내리고 있었다. 제법 굵어진 빗줄기가 창문에 그대로 부딪혀 소리를 내는 게 마치 누군가 노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택운은 잠시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삼촌―.”




  정택운과 나란히 앉은 거실에 짙게 깔린 정적을 깨고 안방에서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부터 그 아홉 살 배기의 아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내내 궁금했는데. 안방에서 자고 있었나보다. 시계를 보니 시각은 이미 새벽 한시를 넘기고 있었다. 나로 인한 소란으로 아이의 단잠을 깨운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아이는 잠에서 깼는데 옆에 아무도 없어서 조금 놀란 듯 했다. 정택운씨는 아이의 잠투정 같은 칭얼거림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안방으로 뛰듯이 들어갔다. 아들이 아니라 조카였구나….




“우주야, 왜 깼어? 삼촌이 많이 시끄러웠나?”

“아니―. 삼촌이 옆에 없어서!”




  부자지간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런 살가운 대화였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또 그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다는 건 저렇게 다정하고 살가운 일일까. 본가에서는 스무 살에 독립을 했다. 그건 즉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지 않은지 8년이나 지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침인사와 안부 인사를 나눠본 적이 언제였는지는 이미 기억이 까마득했다. 확실히 내가 어릴 적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아마 애교 많은 사랑둥이 막내아들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한다. 이미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말이다.


  정택운씨는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그는 품에 안겨 가슴에 얼굴을 부비작 거리며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너무도 사랑스러워 하는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말랑한 순두부 같은 뺨에 입술을 붙였다 떼며 아직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랬다. 그 모습이 어딘가 굉장히 익숙해 보여서 나는 조금 웃었다. 그는 아이가 다시 잠들 때까지 품에 안고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덕분에 아이는 금세 고운 숨소리를 내며 다시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아이를 안방에 눕혀놓고 나오는 정택운씨의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음…익숙해 보인 다는 말은 아무래도 취소다. 


  정택운씨는 풀썩 소리가 날 정도로 주저앉듯 소파에 앉았다. 엄마들은 대단하네요. 이 힘든 걸 어떻게 매일 할까요? 난 가끔도 이렇게 힘든데. 누나가 잦은 출장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는데 그나마 집이랑 직장이 가까워서 빨리 귀가할 수 있는 저한테 잠시 맡겼어요. 바쁘고 재미없는 삼촌이랑 지내느라 아이가 젤 고생이죠. 그의 푸념 섞인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내가 마치 그의 오랜 지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리 나쁘지만도 않은 기분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 제가 너무 혼자 말이 많았죠? 죄송해요. 시간도 늦었고 많이 피곤할 텐데 좀 쉬어요.” 

“아, 아뇨! 전 이제 돌아갈게요.”

“내일 아침 일찍 경비 아저씨가 올라오셔서 상황을 파악하시고 필요하다면 경찰로부터 주위 순찰을 돌게 하셔서 치안을 더 강화하게 할 거래요. 그리고 얼마 전에 이 근처에서 살인사건 일어난 거 뉴스에서 보셨죠?”

“네….”

“그러니까 아직은 좀 위험해요. 아침 일찍 돌아가셔도 되니까 오늘은 그냥 여기 있어요. 그래야 나도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말 이해하죠?”




  나는 결국 정택운씨의 그 화려한 설득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 불쌍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성격인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웃사람이 나와 비슷한 나이라는 게 이럴 때는 조금 괜찮은 거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시는 아주머니들과 있는 것 보다는 아주 조금 더 마음이 편했으니까. 오랫동안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지금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도 어색하고 이상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그의 말에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이라 내게는 모든 게 어렵기만 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그 서늘한 공간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쩐지 선뜻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집에 가고 싶은데 집에 가고 싶지 않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마음이 들게 한 정택운씨는 참. 그래, 참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11월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꽤나 쌀쌀해져 아침 일찍 눈 뜨는 게 점점 쉽지 않아졌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떠도 이불을 걷고 거실로 나가는 그 짧은 과정이 너무도 귀찮고 버거웠다. 신문이랑 우유 가지러 나가야 하는데. 아주 잠깐 현관문을 열었다 닫는 그 작은 일조차 귀찮았다. 오늘만 좀 늦게 나갈까. 설마 홍빈이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오기야 하겠어. 하지만 그 생각은 아주 짧은 시간 만에 바로 수그러들었다. 나는 원래 해야만 하는 어떠한 일이 떠올랐을 때 바로 하지 않으면 금방 까먹곤 했다. 아마 이대로 한숨 더 자고 일어나면 분명 신문과 우유는 내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을 것이었다. 홍빈이가 내 생사를 확인하는 검지손가락 이라고 심어뒀으니 나는 거기에 잘 따라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녀석을 걱정시키면서 살아왔는지 참으로 잘 보여주는 증거들이기도 했다. 사실 좀 귀찮을 뿐이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최대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현관문을 아주 살짝만 열었다. 문고리에 걸어진 파란색 주머니 안에서 우유를 꺼내고 바닥에 곱게 놓여 진 신문을 주웠다. 그 잠깐 맞은 바깥바람은 예상보다 훨씬 차가워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래도 스웨터를 꺼내 입어야 할까.


  신문을 집어 들고 다시 현관문을 닫으려고 했을 때, 육중한 쇳소리와 함께 옆집의 현관문이 열렸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네발자국만 가면 문 앞까지 닿는 그곳. 입을 벌린 문 밖으로 매끈한 검은 구두를 시작으로 검은색 정장바지와 심플하고 깔끔해 보이는 흰색 셔츠와 네이비색 롱 코드가 차례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저렇구나. 그런 뻘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 쯤 그 늘씬한 바디의 사내는 점점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어…나 지금 세수도 안했고 머리도 까치집인데.  




“아침부터 그렇게 사람을 훑어보면 내가 출근하기 싫어지는데.”

“…돈 많이 버셔야죠, 정택운 디자이너님.”

“나도 집에다 작업실 따로 만들어서 집에서 일 할까. 혼자 밥 먹기 싫으면 너 불러서 같이 먹고.” 

“어째 너도 홍빈이랑 똑같은 말을 한다. 얼른 가. 나 추워, 들어갈 거야.”




  정택운씨는, 아니 정택운은 내 예상과 비슷하게 나와 동갑이었다. 나이는 나와 같은 스물여덟에 직업은 구두 디자이너였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말 많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우리는 청량함과 풋풋함을 담당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역시 반상회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 종일 가게에만 있다 보니 참여할 시간이 없는 게 그 이유였지만 사실은 이사 온지 얼마 안됐을 때 딱 한번 참석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자신에게 어마무지하게 쏟아지는 아주머니들의 질문 세례가 좀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어쩜 나와 이유도 이렇게 똑같을까.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함께 만원을 낭비했다. 아주머니들께는 죄송하지만, 난 그 무엇보다 내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이 부분은 마찬가지인 듯 했다. 정택운과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또 동갑내기인 만큼 묘하게 맞는 구석도 많았다. 그래서 그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일찍 말을 트고 친해졌다. 아니, 친해졌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는 건가. 내가 아침마다 신문과 우유를 가지러 나갈 때 그는 출근을 하는 시각이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아주 가끔 음식을 나눠먹는 정도. 딱 그 정도였다. 




“…집에 자주 오나봐, 그 사람?”

“누구? 홍빈이? 자주는 아니고. 그냥 가끔 시간 빌 때나 마감 가까워질 때 몇 번씩.”

“…나 갈게. 혼자 심심하면 가게 오든가.”

“너 이러다가 지각해, 빨리 가.”

“내가 오너인데 지각이 어디 있어.”




  정택운은 뭔가, 홍빈이 얘기만 나오면 그 하얀 고양이 같은 얼굴이 미운 다섯 살의 얼굴이 되는 것 같은 건 그냥 내 기분 탓일까. 따지고 보면 홍빈이를 몇 번 본적도 없을 텐데 정택운이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그럴 이유도 없고. 나는 정택운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그 잠깐 밖에 있었다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정말 홍빈이의 말대로 집에만 있어서 건강이 나빠지는 걸까. 그래도 요즘에는 한 끼는 꼭 밥을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말이다. 


  나는 신발을 벗으면서 현관에 위치한 재활용 쓰레기 박스에 신문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건너와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넣으려던 중, 아직 내 손에 들려 있는 500ml 짜리 우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늘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냉장고 속에 들어가 유통기한이 다 되도록 방치되는 우유이건만. 어쩐지 오늘은 냉장고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아닌 뭔가 제대로 된 역할을 다 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싱크대에 쏟아버린 우유만 몇 개인데,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오늘 아침은 기분이 괜찮으니까. 음 뭐가, 어떻게, 왜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무겁지도 않고 컨디션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찬장에서 작은 머그컵을 꺼내 우유를 반쯤 붓고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몇 분후 띵―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작동을 멈춘 전자레인지 안에서 머그컵을 조심히 꺼냈다.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거실로 천천히 걸어왔다. 따뜻한 것을 마시니 몸이 따뜻하게 풀어지면서 기분도 훨씬 나아졌다. 항상 아침에는 안 따지는 눈을 겨우 떠 억지로 일어나 신문과 우유를 챙겨 들어와서 대충 던져놓고 다시 잠들기 바빴었는데. 음, 이런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네.




“정택운은 잘 갔나…. 또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아침부터 퉁퉁 불은 얼굴이나 해가지고. 가끔 보면 우주보다 더 애 같다니까.”




사실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좋았다.















  주말에 출근을 하지 않는 정택운은 내게는 뭔가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다. 혹시 워커홀릭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워낙 가게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조깅을 하고 오는지 늘 출근할 때 입던 정장과 코트가 아닌 가벼운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나 역시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게 신문과 우유를 주워 들고 현관문을 닫으려던 중,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정택운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매일 출근하느라 단정하고 깔끔하게 갖춰 입은 것만 보다가 이렇게 조금은 풀어진 모습을 보니 새삼 얘가 나랑 동갑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모습도 거리감 좁히고, 나쁘지 않네.




“오늘은 출근 안 해?”

“어, 오늘 우주 생일이라 하루 뺐어.”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구나. 어린 조카와 놀아주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는 모습이 삼촌이 아닌 그냥 딱 아빠 같아서 나는 정택운 몰래 조금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응?”

“너한테는 좀 갑작스러울 거라는 거 아는데. 우주가 놀이공원에 가고 싶대. 근데 너도 꼭 같이 갔으면 좋겠대.”

“아…….”

“…역시 좀 그렇지? 미안, 너 곤란하게 할 마음은 없었는데. 우주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춥다, 얼른 들어가.”




  나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털며 조금 멋쩍은 얼굴로 돌아서는 정택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말을 트고 가깝게 지낸지 얼마 안 된 내게 저런 부탁을 하는 게 정택운의 성격상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너무 단호하게 거절했나 싶어 괜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의 나였다면 어차피 집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거절했을 것이고 거절을 했다는 그 사실도 금방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그 거절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까 왜. 대체 왜 마음에 걸리는 건데. 쿵, 소리와 함께 옆집의 현관문이 닫혔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발이 시려옴에 그제야 내가 맨발로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문을 닫았다. 금세 차가워진 발에 슬리퍼를 신으며 마지막 정택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냥 놀이공원 같이 못 간다고 했을 뿐인데 뭘 그런 얼굴을 해. 사람 괜히 미안해지게.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와 눕고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려 덮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이렇게 신경 쓰이고 찜찜했던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역시나 답은 NO였다. 거절했으면 그걸로 끝이었지 그걸로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적은 정말 다섯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한참을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결국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계속 이렇게 신경 쓰고 정택운에게 미안해 할 거라면,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다녀오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외출을 한지도 꽤 오래됐다. 몸에 이끼 생기기 전에 오늘 한번 나갔다 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홍빈이가 사람이 너무 집에만 있어도 안 된다고 했으니까. 난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프리랜서니까 아프면 곤란하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시작된 나의 기나긴 자기 합리화의 끝에는 오늘 나는 집 밖으로 나간다, 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내가 이 결정에 얼마나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 정택운은 꼭 알아야 하는데.














“…아까 그 찰나의 망설임은 거절이 아니었나? 난 그렇게 알아들었는데.”

“나 그럼 다시 들어갈까?”

“아니! 아니. 일단 타. 뒷좌석에 우주 있어.”




  정택운은 혹여 내가 말을 바꿔 마음을 돌릴까 얼른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뒷좌석의 문을 힘차게 열자 우주가 그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과자를 먹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 말랑한 순두부 같은 하얀 볼에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 있다. 눈깔사탕 같은 동그란 눈이 크게 뜨여서는 여전히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왜 진작 이 외출에 응하지 않았는가를 혼자 고뇌했다. 우리 우주 많이 놀랐구나. 오늘 삼촌들이랑 놀이공원 가서 재밌게 놀자! 삼촌도 가요? 그럼 오늘 우리 셋이서 놀러가는 거예요? 우와!! 아이의 놀랐던 눈은 곧 아주 예쁘게 휘어졌다.


  우주는 생일 날 삼촌들과 놀이공원에 간다는 것에 굉장히 신이 난 듯 보였다. 작고 오동통한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아직 서투른 발음으로 옹알옹알 노래를 불렀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고 같이 살게 된 삼촌마저도 늘 바빠서 저녁시간 쯤에나 겨우 볼 수 있을 테니 또래들에 비해 어딘가를 놀러간 기억이 많이 없을 것이었다. 정택운은 그것을 참 많이 미안해했고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른 아이 같은 우주는 그런 삼촌을 이해하는지 떼를 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참 어리광 부릴 나이인데 너무 일찍 세상 밖의 모습을 알아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괜스레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여전히 잔뜩 신이 나 노래를 부르는 우주의 동그마한 작은 머리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비록 부모님처럼 세심하지도, 별로 재미있지도 않을 삼촌들이겠지만. 아이가 앞으로 나이를 먹으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그렇게 아주 천천히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오늘 이 생일날의 외출이 더 없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자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우주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이 정도겠지만 아이는 반드시 정택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어른이 될 것이다. 그 과정들을 나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고 싶은데. 글쎄, 정택운이 먼저 이사를 가지만 않는다면 아마 가능하지 않으려나.




“누가 보면 우주가 네 아들인 줄 알겠다.”

“아니 뭐…애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아까 거절한 게 살짝 미안한 것 같기도 해서.”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틋한 얼굴로 우주를 내려다보는 나를 정택운은 룸미러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뭔가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어 그대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피식, 하고 정택운 특유의 그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을 똑바로 바라 볼 용기는 없었다. 이 요상하게 간지러운 분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적응도 안 되고 면역은 당연히 있을 리 없는, 이 알 수 없는 몽글몽글한 구름 같은 기분은 또 뭐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는 일이 잦아질수록 정택운은 나를 조금, 아니 상당히 이상해지게 만들었다. 평소 하지도 않던 일을 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결국은 이렇게 행동하게 만든다. 나는 그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악몽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발버둥 치면서 미친 듯이 글만 쓰는, 그런 심해의 물고기 같은 사람인데. 창공을 날아오르는 새 같은 한없이 빛나는 너는,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걸까. 계속 그렇게 말랑말랑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어디 속 시원히 말 좀 해보시지.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아마 어딜 가나 사람이 미어터질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입구 쪽부터 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이의 생일이라 놀이공원에 가는 것 까지만 생각했지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집 안에만 있었다는 것을 티내기라도 하는 건지.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걸 잊었을까. 나 같은 프리랜서야 요일 개념이 별로 없지만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들은 거의 주말에 쉰다. 그 사람들이 쉬는 주말에 외출을 한다면 어디를 가든지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곳은 놀이공원인데. 나는 지극히 내 기준대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저 오랜만에 하는 외출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참 안일하고 멍청했다. 어떻게 한 치 앞을 못 보냐, 너는. 나는. 정택운이 자유이용권을 끊으러 간 사이 나와 손을 잡고 있는 우주는 그렇게 기대하던 놀이공원에 왔다는 것에 매우 신이 나 보였다. 출판사 사람들과도 아주 가끔 얼굴을 보고 정택운이 운영하는 가게에도 가봤으니 이제는 낯선 사람을 마주해도 괜찮지 않을까 했었는데. 조금도 괜찮지가 않았다. 


  내 주위를 가득 매운 수많은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목소리와 길게 이어진 놀이기구의 줄로 달려가는 발소리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귓가에서 서서히 뭉개졌다. 그리고 마치 비디오 파일을 느리게 재생시킨 듯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느리게 흘러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거 끊는 데에만 한참 걸렸다. 빨리 들어가자.”




  정택운은 혼잡하고 정신없는 주위 때문에 아직 내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우주의 반대편 손을 잡고 놀이공원의 입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 걸음에 맞춰 내 걸음 또한 같이 옮겨야 하는 게 맞는데. 나는 나를 지탱한 두 발에 마치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귓가의 소리가 기묘하게 뭉개지고 눈앞의 풍경이 비이상적으로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극심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온 힘을 다해 달음박질을 한 듯 심박이 너무도 크게 뛰었고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상태는 나이질 기미는커녕 나중에는 목소리조차 아예 나오질 않았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가 꼭 이렇지 않았을까. 빼앗겼다기보다는 억지로 바친 게 더 맞겠지만. 마치 누군가 내 목소리를 일부러 차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막막함마저 들었다. 혹시 내가 아이의 생일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돼버린 것 같았다. 




“학연이 삼촌 왜 그래요? 다리 아파요?”




  아. 내가 우주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 상태가 이렇게 흐트러지는 와중에도 나는 아이의 손만은 절대로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나보다. 이렇게 복잡한 인파 속에서 아이마저 잃어버린다면 난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으니 말이다. 아이는 정택운에게 나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뚝뚝한 정택운이 그렇게 망설이면서 내게 부탁까지 할 정도로, 아이는 그걸 원했다. 사실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서 더 없이 기뻤던 것 같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나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나약한 내가 누군가의 생일에, 그리고 누군가의 휴가에 작게나마 즐거움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게 기뻤고 그 상대가 나를 원해준다는 것에 더 없이 큰 고마움을 느꼈다. 늘 혼자 있기를 원했지만,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혼자이기를 원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랬었다. 정말, 그랬었는데.




“학연아. 학연아, 괜찮아? 학연아!”




  정택운은 아이의 손을 꼭 붙든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일어날 줄 모르는 나의 이름을 마치 이성을 깨우듯 크게 불렀다. 그의 정성도 모른 채 그 다급한 목소리는 내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무릎을 모으고 쪼그리고 앉아있던 내 자세가 기어이 무너지면서 차가운 땅바닥에 몸이 닿았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짐을 느꼈다. 이제 어떡하지. 택운아, 나 어떡해….


  생각해보니 정택운이 처음으로 나를 학연아, 라고 불러준 순간이었다.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듣는 내 이름인데 나는 하필 이런 거지같은 상황이라니. 조금은, 아니 사실 많이 억울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의료 기계의 소리들.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 냄새와 이 공기는 조금도 잊혀 지지 않았다. 유괴범으로부터 구조가 되어 약 한달 정도를 그곳에 있었다. 가끔 내 상태를 살피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흠칫거리며 놀랐고 당연히 문 밖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오로지 그 공간에 내 몸을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병원이라는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말이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자 나는 왼쪽 팔에 꽂아진 링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집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어차피 이런 꼴이 될 거였는데. 정택운이라는 옆 집 남자를 알게 되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나누고. 그러는 사이 나는 내가 달라지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것이 내 착각이고 오만이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다시 한 번 깨달은 것뿐이었다. 내가 정말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멍청하고 나약한 나를 마음껏 자조했다. 


  심해의 물고기는 원래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저 깊은 바다의 밑에서 살아야 한다. 그게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런 존재가 하늘에 떠다니는 새를 따라 올라가려 발버둥을 쳤으니 이런 꼴이 된 것이다.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 하는 물고기에게 주어지는 것은 결국, 처참한 죽음뿐이다.




“일어났어? 몸은 좀 괜찮아?”




  어쩌면 그는 가족과 홍빈이 이후로 나를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 경계심의 껍질을 조금씩 살살 벗겨내고 완전한 나비가 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어차피 처음부터 나비가 아니었다. 그러니 날아갈 수 있는 날개도, 용기도 당연히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내 일생에 몇 오지 않을 정말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지만 나로 인해 그의 날개가 젖지는 않을까 너무도 염려스러웠다. 원래 창공의 새는 하늘에서 살아야지 물고기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거니까.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놀이공원은 왜 가자고 해가지고.”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하지…. 우주는?”

“누나가 와서 데려갔어. 좀 놀란 것 같아. 너 걱정 되게 많이 하더라.”

“우주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줘….”

“됐어. 얼른 괜찮아지기나 해.”




  정택운은 내 이불을 꼼꼼히 잘 덮어주고 링거액이 제대로 잘 투입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주었다. 그의 휴가를 이렇게 병원에서만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택운아, 집에 가자. 나 퇴원할래.”

“더 쉬어. 의사선생님이 적어도 오늘 하루는 있어야 한대.”

“아니야, 그냥 집에 갈래. 집에 가고 싶어.”

“…그래. 그러자, 그럼.”




  완고한 나의 말에 정택운은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게 해주었다. 내 겉옷을 집어 들고 신발을 챙겨주는 그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남자 오늘 나 때문에 되게 고생이 많네. 병원은 아직 입원수속을 밟지는 않아서 병원비만 납부한 뒤 금방 나올 수 있었다. 정택운은 내 코트를 다시 꼼꼼하게 여며주며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나를 혼자 두고 다녀오자니 마음이 영 안 놓인다고 했다. 그는 원래 이렇게 표현이 많은 사람일까. 썩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가 나를 이렇게 챙겨주는 게 너무 좋았다. 뭔가 내가 그에게 살뜰히 보호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그랬다.




“ 타. 추운데 얼른 가자.”




  조수석 문까지 직접 열어준다. 되게 친절하네, 정택운. 그의 휴가가 나로 인해 이미 반은 날아가 버린 셈이었지만 그나마 남은 반이라도 잘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겠지만. 사실 19년 전 그날의 악몽을 저절로 불러들이게 만드는 병원에 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유괴범이 다시 나를 잡으러 올까봐 두려워 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꽁꽁 숨어있던 그곳의 공기와 냄새를,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집이라도 차라리 그곳이 나았다. 집에 가야겠다. 집에, 가야겠다.




“우리 집으로 갈 거지?”

“…우리 집으로 갈 건데.”

“집에서 우주가 너 기다리고 있대. 그러니까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자.”

“비겁하게 우주 카드를 꺼내신다 이거지.”

“비겁하긴 누가. 난 사실을 그대로 전한 것뿐인데.”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정택운은 나의 별로 곱지 않은 말들에 밉지 않게 대꾸를 하면서도 혹시나 내가 어디 불편하기라도 할까 운전을 더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가 나를 배려하고 있는 것도, 내 컨디션이 얼른 나아지길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미안했고 또 그만큼 너무 고마웠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놀이공원은 무슨.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맛있는 거 뭐. 치킨? 탕수육?”

“내가 요리 해줄게. 우주 생일이기도 하니까.”

“오…. 너 요리도 해? 구두만 잘 만드는 게 아니었나보네.”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 너보다는 나을 걸.”

“맛없으면 가차 없이 디스 해 줄 거야. 두고 봐라, 너.”

“그러던지.”




  정택운은 내 기분이 어느 정도 나아진 것을 눈치 챘는지 입 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것이 보였다. 무뚝뚝하고 표정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알기 쉬운 남자였어. 그의 하루뿐인 휴가가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반 이상을 망쳐버렸지만 남아있는 나머지 반이라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너로 인해 비로소 안도의 숨이라는 것을 쉬고 있는 것 같으니, 그게 너무 고마우니까. 그러니까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꼭 말이다.














  이 집에 이홍빈 말고 불청객이 또 한 명 더 늘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요즘 정택운은 점심시간이나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 혼자 시간 때우기 애매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오곤 한다. 어쩜 불청객 1호랑 이유마저 이렇게 똑같을까. 원래 직원들은 사장이 자리를 비켜줄 때 제일 좋아한다더라. 그 말을 하는 정택운의 얼굴이 묘하게 씁쓸해 보여 나는 그에게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줄 수 있는 게 이 우유밖에 없다.




“집에 혼자 있는 너 심심하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오는 거야.”

“아닌데. 전혀 안 심심한데.”

“아닌데. 되게 심심할 텐데.”




  정택운은 공주가 사는 춥고 어두운 성의 벽을 허물고 그 안으로 들어가 공주의 손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온 왕자님 마냥 나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왕자의 손에 이끌려 나온 공주라는 말을 하자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우주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나는 거기에 기꺼이 속아주기로 한다. 그 정도로 내게 어떠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을 내는 사람은, 정말로 흔치 않으니까.




“그거 나도 줘.”




  우주가 좋아해서 자주 먹는 거라며 정택운이 코트 주머니에 바리바리 넣고 온 꼬마 곰 젤리였다. 이제 하다하다 애기 것을 훔쳐 오냐. 가볍게 핀잔을 주긴 했지만 한 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것이 꽤 맛있다. 이래서 우주가 좋아하나. 나는 내 앞으로 쭉 내미는 정택운의 넓디넓은 손바닥에 젤리 한 개를 집어서 올려주었다.



    

“아니, 그거 말고. 빨간색.”




  …빨간색. 내가 아홉 살 이후로 볼 수 없었던 그 색. 몰랐는데 여기에도 빨간색이 있었나보다. 내 눈에는 노란색들만 보여서 노란색만 있는 줄 알았지. 입 안에 남아있는 젤리를 오물거리며 봉지 속을 들여다봐도 여전히 내 눈에는 죄다 노란색 아니면 무채색들뿐이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직도 손바닥을 그대로 내밀고 있는 정택운에게, 나는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뭐라고 설명해야 그의 눈에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신체검사를 하는 날 처음으로 색맹검사라는 걸 했었는데. 그때는 어렸던 그 들의 눈에 초록색과 파란색과 빨간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내가 충분히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이게 안보여? 왜? 왜 안 보이는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고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그 어린 날의 호기심은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상처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그저 보통이 아니라면 특이한 아이로 인식이 되곤 한다. 특이한 아이는 어린 그들의 눈에 어딘가 모르게 이상해 보이기도 하여 시선이 더 오랫동안 머문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오직 내게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그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물론 특이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특이함, 그러니까 그 색맹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분명 어떠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겐 더 없이 나쁜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그날이 없었더라면 애초부터 생기지도 않았을 그런. 그런….




“…네가 직접 집어가.”

“네가 직접 집어줘.”




  그리고 이건 최근에 느낀 건데. 정택운은 조금 이상한데서 아주 희한한 고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집은 내가 도저히 꺾을 수도, 그렇다고 그대로 수용하기에도 난감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네 두 손이 멀쩡히 다 놀고 있는데 굳이 내 손으로 이걸 직접 달라는 건 무슨 심보일까. 뭐 작은 거 하나라도 더 시키고 싶어 하는 그런 초딩 심보? 아무리 봉지 속을 들여다 본다한들 19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지금이라고 보일 리 없었다. 




“…나 사실 빨간색을 못 봐. 그러니까 네가 가져가.”




  나는 형형색색의 젤리가 든 봉지를 정택운의 앞으로 더 내밀며 애서 덤덤한 척 말했다. 결국 내가 택한 것은 어떠한 설명 대신 침묵을 가장한 직접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처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정택운이 이해하지 못한다한들 내가 거기에 상처받을 이유 또한 더더욱 없었다. 


  언제였던가. 홍빈이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형에게 아무렇지 않지 않은 일이라도 형이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면, 그건 그냥 아무렇지 않은 일이 돼. 그때는 저게 대체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는데. 어쩐지 그 말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거라면 스스로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가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물론 나와 똑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이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그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잘 감춘다한들 은밀히 드러나는 그 민낯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에도 익숙해 져야만 한다. 




“색맹이야?”

“……어.”

“특이하네.”




  그런데, 특이하다고 말하는 정택운의 그 얼굴이 마치 그 옷 특이하네, 하고 일상적인 말을 건네 듯 너무도 편안해 보여서, 나는 순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복잡하게 엉켜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맥없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찰나에 들었던 감정은 감히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네 눈에는 내가 이상하지 않아?




“…안 이상해?”

“뭐가?”

“아니…색을 잘 구분하지 못 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가? 그래 네가 이상하다면 이상한건가보다, 그럼.”




  이상한가? 라고 묻는 정택운의 얼굴이 어쩐지 너무도 천진한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지금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를 애써 위로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게 왜 이상한건가, 순수하게 궁금해 한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

“나는 잘 보이는 게 너한테는 안 보이니까.”

“…….”

“근데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너 같은 사람도 있는 거고. 사람이 어떻게 다 똑같아.”




  알게 된지 두 달도 채 안 된 너에게. 나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이름과 나이와 옆집에 혼자 산다는 것이 고작일 너에게. 나는 희한하게도 위로, 그래 위로를 받고 있었다. 아홉 살 때 유괴를 당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어떠한 유해의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던 가족들에게조차 받지 못했던, 그 위로라는 것을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지.




“우주 데리러 가야겠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같이 갈래?”

“…그래도 돼?”

“안 될 건 또 뭐야.”




  나는 차키를 집어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는 정택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일까. 어떤 부모님의 아래에서 어떻게 자랐기래, 이런 이상한 나를 전혀 거리낌 없이 대해주고 모두 이해해 주는 걸까. 그게 어떤 모습이든지 아마 나와는 정반대이겠지. 나를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네가 고마우면서도 기분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고 또 가끔은, 아주 가끔은 너에게 내가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참 염치없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그 아늑함을 깨닫게 해준 것만으로 너는 충분히 내 은인인건데.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나는 아마 네가 아니었다면 그 축축하고 서늘한 공간을 언제까지고 나를 지켜주는 요새라고 착각하면서 살았을 텐데. 몸에 이끼가 잔뜩 낀 채, 그렇게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실은 너무도 춥고 외로워서 누군가의 온기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것을 손에 쥐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갈 용기 따위는 없어서였다는 것을, 나는 너로 인해서 깨달았는데. 이 정도면 정말 과분할 정도로 네게 받은 것이 많은데. 참 뻔뻔하기 그지없지. 나는 네게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라는 걸까.




“학연아.”

“어.”

“말로 하지 않으면 몰라.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건, 그건 그냥 영화나 드라마지.”

“…….”

“…그러니까 나한테는 말로 해줘. 정 말하기 힘들면 아주 나중에라도 대충 뭉뚱그려서 해줘. 그때는 내가 알아서 잘 이해해볼게.”

“…그래.”

 

 


  말을 마친 정택운은 코트를 걸쳐 입고 현관으로 나가 구두를 신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두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택운아. 내가 네 손을 잡아도 될까.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길의 통로에 서서 내게 다정히 손을 내미는 너를, 나는 정말 믿어도 괜찮을까. 심해의 물고기 같은 내가, 창공의 새 같은 네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혹여 내가 너를 저 검고 깊은 심해로 끌어당긴다고 해도 너는 나를 안고 다시 창공으로 날아올라 줄 수 있을까. 너는 내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가자.”

“응.”




  믿고 싶어졌다. 아직은 내용물을 전혀 알 수 없는 통조림의 겨우 껍데기만을 본 상태라고 해도. 그게 나를 구원해 줄 동아줄이라고 굳게 믿고 싶어졌다. 너를, 그러니까 정택운 너를.




“우주가 너랑 같이 온 거 보면 되게 좋아할 거야. 어떨 땐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자꾸만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싶어졌다. 이런 나를 정말, 어쩌면 좋을까.














“요새 형 글, 뭔가 달라진 것 같아.”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데? 문장이 별로야? 어디가 어떻게 별론데? 수정할 시간 빠듯한데.”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작가인 나 다음으로 내 글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아마 홍빈이일 것이다. 녀석은 내 작품의 일정을 파악하고 또 편집자와 나의 일정을 조율해주는 일을 한다. 말하자면 내게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직책의 사람인 셈이다. 그리고 나와 피를 나눈 내 가족들보다도 얼굴을 더 자주 보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녀석과 함께한 세월이 결코 짧지는 않았다.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녀석이 나에 대한 어떠한 변화를 캐치했다면 그건 아주 좋은 것이거나, 혹은 아주 나쁜 것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요 근래에는 가끔 외출도 했었고 불을 끄고 자도 악몽을 꾸지 않았다. 수면제도 필요 없을 만큼 잠을 아주 잘 잤다. 여전히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예전처럼 출저 없는 공허함과 우울함이 찾아오는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나는 몇 년 사이의 생활들 중 지금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컨디션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아무래도 글일 것이다. 나는 워낙 기복이 심해서 도저히 같은 사람이 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글들도 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랄병이라고 했지만 홍빈이는 작품의 다양성이라고 아주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그런 녀석이, 내게 글이 달라졌다는 말을 한다. 뭐가 어떻게 달라졌다는 걸까. 제법 심각해 보이는 녀석의 얼굴에 나는 덩달아 불안해져 나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흑돼지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해요, 내가. 나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렇게 손톱 뜯기 있냐 없냐?”

“그러니까 뭔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으니까 빨리 말해!”




  홍빈이는 내게서 무언가를 캐내려는 듯 한동안 말없이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나는 그 견고하고도 집요한 시선에 그만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녀석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전혀 모르는 주제에, 어쩐지 저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홍빈이는 모든 것을 나보다 더 먼저 알아차린다. 그리고 마치 떠 보듯이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마음의 저 깊숙한 심연까지도 다 들킨 것만 같은 그 기분은 도저히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너는 왜 사람의 눈을 그렇게 빤히 봐? 언제였던가, 내가 던졌던 그 질문에 녀석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냥, 습관이야. 오랜 습관. 녀석은 대학교 때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아마 그때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관찰한 모습으로 누군가의 심리를 파악하던 것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거라고,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고 했다. 녀석이 언제나 나보다 나를 더 먼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 동안에도 그 이상으로 망가지는 것을 미리 막아줄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아직 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그것을 홍빈이는 이미 눈치 채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내가 정택운을 볼 때 왜 그러는지. 왜 그런 이상하고 간지러운 기분이 드는지 말이다. 녀석이라면 아마 알고 있지 않을까.




“흑돼지, 뭔 반응이 그래? 나 진짜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깐―.”

“…그러니까 빨리, 말 해달라고.”

“음,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형 스스로 깨닫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말해달라니까!”

“……우리 형 이제 진짜 어른 다 됐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나 어째 좀 서운하려고 한다.”

“됐어. 너 그냥 꺼져. 빨리 집에나 가버려.”




  어차피 이홍빈은 내게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이만 포기를 하는 게 낫겠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웃는 저 잘생긴 얼굴이 괜히 얄미워서, 나는 녀석의 발을 확 밟고 주방으로 건너갔다. 악!! 흑돼지 겁나 아파!! 녀석의 비명 아닌 비명을 무시한 채 노트북이 있는 식탁 앞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원고 파일을 열어 그 안에 나열된 문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뭐가 달라졌을까. 대체 뭐가 어떻게 달라졌다는 걸까. 내 속을 있는 대로 실컷 헤집어 놓고 커다란 궁금증만 미끼처럼 던져준 채 여전히 천하 태평한 얼굴로 웃고 있는 이홍빈이 괘씸해 나는 녀석을 한껏 노려보았다. 내가 이렇게 노려본다한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녀석이라는 걸 잘 알지만. 형 너 지금 표정 되게, 화난 뱁새 같다. 끝까지 나를 놀리는 녀석의 보조개가 더욱 깊어졌다.


  내 눈을 들여다보던 이홍빈의 얼굴이 아주 잠깐 심각해졌었지만 곧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 건방진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보니. 나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가보다. 나,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야.














  오늘 정택운은 직원들과 회식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 내게 우주를 잠시만 돌봐달다고 했다. 우주는 삼촌이 오늘 늦는다는 말에 잠시 시무룩해 하더니 대신 삼촌이 올 때까지 나와 있을 거라는 말에 금세 말갛게 웃어 보였다.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품는 애정은 맹목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나를 이렇게 좋아해주는걸 보니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우주는 생각보다 아주 잘 놀았다. 정택운 없이 이렇게 우주와 둘이서만 있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 아이가 어색해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우주는 너무도 착하게 잘 놀아주어서 내가 오히려 아이에게 고마웠다. 나 정말 똑 부러지는 게 하나도 없는 그런 무늬만 어른이었네.


  밤 열한시가 넘자 우주는 졸린 듯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가를 부비적 거렸다. 삼촌 졸려요―. 잠에 취해 한껏 늘어진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그 어린 목소리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따뜻하고 말랑한 분내가 나는 볼에 내 볼을 몇 번 부비고는 그대로 안아 들어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정택운은 우주가 같은 아홉 살 또래들에 비해 유난히 더 작다며 약간의 걱정을 했었다. 작으면 어때.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아직 한참이나 작고 어린 몸을 폭신한 침대에 눕혀 주었다. 우주는 침대에 몸이 닿자마자 고롱고롱 작게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 들었다. 꿈도 꾸지 말고, 편안하게 꿀잠 자요. 푹 자고 일어나면 아마 진짜 삼촌이 와 있을 거야.


  방문을 살짝 열어놓은 후 최소한의 발소리조차 잠든 아이에게 소음이 될까 염려스러워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왔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정택운은 왜 안 오는 걸까. 네가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 우주는 나한테 떡하니 맡겨놓고 너는 어디에서 뭘 얼마나 새하얗게 불태우고 있는 거냐. 괜히 얄미운 마음이 들어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루 종일 아이와 있다 보니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어깨가 다 뻐근했다.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어서 소파에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졌다.


  자정이 지나자 슬슬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는 우리 집도 아닌데 무려 잠이 온다니. 내 집의 내 침대가 아니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지 못했던 지난날들의 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나는 정택운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는 내 일상 안으로 발을 담그고 그대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가랑비처럼 내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렇게 흠뻑 젖게 만들었다. 기다리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들고, 자꾸만 닿고 싶게 만들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내 모습에 나조차도 당황스러워 하고 있을 때 그는 내 손을 잡고 그의 우산 속으로 다정히 이끌었다. 이제 비 그만 맞고, 내 우산 속으로 들어오라고.


  소파에 누운 채 아주 잠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늘한 가을의 새벽 공기에 약간의 추위가 느껴져 퍼뜩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내 바로 앞에는 정택운이 앉아있었다. 언제 온 걸까. 아니 언제부터 잠든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괜히 머리끝만 만지작거렸다.




“언제 왔어?” 

“…아까.”

“깨우지 그랬어. 많이 피곤할 텐데 얼른 옷 갈아입고 자.”

“오늘 우주 돌봐줘서 고마워.”

“고맙긴. 나도 우주랑 같이 놀아서 좋았는데, 뭘.”




  정택운은 취해 있었다. 발음을 틀리지 않게 말하려고 나름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살짝 늘어지는 말꼬리와 그에게서 풍겨오는 독한 알코올 냄새가 그것을 분명히 말해주었다. 약간 정신이 없어 보이는 그를 부축해 침대에 잘 눕혀 주었다. 오늘 이 집 남자들 내가 차례로 다 눕혀서 재워주네. 정택운은 반쯤 감긴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며 아직 침대 머리맡에 서있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까. 평소 말을 아끼던 그였지만 술의 힘을 빌려 취중진담이라도 하려는 걸까. 내 생각과는 달리 정택운은 그렇게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올려다보다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이 남자, 사람 되게 허무하게 만드네.


  우주도 안 깨고 잘 자고 있고 정택운도 안전하게 귀가한 걸 확인했으니 나도 이제 집에 가서 얼른 자야겠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내라도 된 것처럼, 나는 그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아주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이렇게 무사히 잘 들어와서 편안히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차학연, 아주 웃겨 그냥.


  정택운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 방문도 조심히 닫아주었다. 그가 혹시나 잠에서 깰까 발소리를 죽인 채 그대로 거실을 지나쳐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하아―. 한숨 같은 숨이 길게 흘러 나왔다.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오는 길이면 너무도 피곤하고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내 오랜 습관처럼 굳어졌다. 머리로는 잊었어도 몸이 기억하는 것은 아주 솔직하다고, 정택운의 집을 벗어나자 나도 모르게 그 습관이 튀어나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몸이 이미 적응을 마쳐버린 내 오랜 습관인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여전히 아무도 없을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째서인지 조금도 우울하지도, 공허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내가 어디에 있든지 온전히 혼자 머무르는 시간은 아주 잠시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정택운으로 인해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롭거나 공허하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으로도 살 수 없을 만큼의 값진 것을 이미 받은 셈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이 이상의 것을 바라면 안 되는 것이다.


  우울은 행복보다 전념이 훨씬 빠르다고 했다. 정택운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에 기쁨을 느꼈던 순간이 마치 달디 단 꿈이었던 것 마냥, 그의 집으로부터 네발자국을 걸어 다시 내 집 앞에 닿아 현관문을 여는 그 순간이 또 다시 참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비록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바로 잠든 탓에 그 불편함 때문에 금방 깨버렸지만 말이다. 몇 시쯤 됐을까. 잠들기 전 침대 맡에 대충 던져 둔 핸드폰을 찾으려 이불을 뒤적거리다 순간 흠칫. 방안 곳곳에 짙게 깔려있는 새벽의 정적을 깨고 크게 울리는 벨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거는 사람은 아마 가족이나 홍빈이 뿐일 텐데. 마감은 이미 지난 시점이라 이 야심한 새벽에 이홍빈이 내게 전화를 할 리는 없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갸웃 거리며 들여다 본 화면에는.




“…….”




  …정택운이다. 화면에 찍힌 발신자는 놀랍게 정택운 이었다. 술에 취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그가 왜 이 늦은 새벽 시간에 내게 전화를 했을까. 궁금한 마음은 이미 부풀고 부풀어 태산이 되어 나를 덮쳤다. 받고 싶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이미 마음먹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아직 울리고 있는 벨소리가 그대로 끊길까 두려워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나 때문에 깼어?

“아니. 이미 깨어있었어.”




  정택운은 술에 취한 채 그대로 잠이 들어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었다. 늘 깨끗한 미성만을 듣다가 이런 가라앉은 목소리는 또 처음이라 그게 조금 새로워 핸드폰을 귓가에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갔다. 정택운 옆집 살아서 참 좋네. 이런 목소리도 들어보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할 말을 고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다시 잠이 든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몇 시간 전, 그의 집 소파에서 잠이든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부터 그는 줄곧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그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 이야기를 알 방법이 없었다. 몇 분간을 그렇게 그의 고른 숨소리만 계속 들리기에 다시 잠이 들었구나 싶어 나는 조금 아쉽지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 할 때였다.




― …네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그런 건지 몰랐어.

“우주 생일 때?”

― 응. 그때 진짜 미안 했어….”

“다 지난 일이잖아. 사과도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그만 잊어버려.”

― …사실. 우주는 그냥 핑계였어. 내가 너랑 같이 가고 싶었어. 셋이서 어디 놀러 가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럴 줄은 몰랐어….”




  역시 잠이 든 것 아니라 내게 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택운은 그날 이후로도 계속 그 일을 생각하고 신경 쓰고 있었나보다. 아마 의사에게서 내가 갑작스럽게 공황발작을 일으킨 것 같다는 말을 들었겠지.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놀이공원에 갈 것을 선택한 사람은 결국은 나였기 때문에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거기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니. 이 남자, 은근히 여리다. 우주는 그냥 핑계였고, 사실은 그가 나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싶었다는 그 말은 묘하게 나를 설레게 했다. 이런 간지러운 말들도 그가 술에 취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쨌든 그 말을 그의 입으로 직접 들었으니.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놀림감으로 쓰기 좋겠다는 생각에 저절로 내 입 꼬리가 올라갔다.




― …맨 정신으로는 앞으로도 못할 말들일 것 같아서. 진짜 이렇게 취한 상태에서 하기는 싫었는데…. 근데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것 같으니까 술 취했다는 핑계로라도 하고 싶어서.




  문장의 맥락이고 뭐고 다 무시한 채 마치 아이처럼 띄엄띄엄 말들을 만들어 얘기하는 걸 보니 얘가 취하기는 취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게 뭔가 굉장히 귀여웠다. 근데 맨 정신으로는 앞으로도 절대 하지 못할 이야기라니.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다니. 정택운은 대체 무슨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걸까. 나는 핸드폰을 다시 고쳐 들고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절대 못할 이야기라면. 뭐 어떤 고백 같은 건가.




― …그 이후로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실 엄청 궁금했었어.




  취중진담. 술에 잔뜩 취한 그가 취중진담이라는 것으로 내게 어떠한 이야기를 전하려나보다. 나는 더욱 숨을 죽인 채 그가 조용히 꺼내는 말들에 귀를 기울였다. 한 문장도, 한 단어도 그냥 헛되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 …그 날의 일로 인해 너한테 어떠한 트라우마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그런 걱정도 참 많이 했어.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못했었는데.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한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텐데 내가 괜히 헤집어놔서 너를 더 괴롭히는 건 아닐까, 그것도 겁이 나서 도저히 못 찾겠더라.


“…….”


 ― 네 집 앞에 수상한 사람이 서성거렸던 날. 너한테는 그날 너를 처음 봤다고 말했는데 사실 나 부동산에서 여기 집 보러 왔을 때 너 봤었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상하게 한 눈에 바로 너인 줄 알겠더라. 그때는 말을 해본적도 없었고 네 얼굴을 오래 본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너는 나를 전혀 모르는데. 진짜 신기하지.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게 만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날 집을 더 보지도 않고 중개인한테 이 집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곧바로 계약까지 다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현관문을 살짝만 열어놓고 우유랑 신문을 가지고 바로 다시 들어가는 그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는 거야. 정말이지 가슴이 벅차고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올 정도였어.




  지금 정택운은 과연 취한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제법 긴 이야기를 하는 그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기만 할 뿐 아주 또렷했다.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가 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점점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가 전하고 있는 이 모든 말들이 정말 내가 겪었던 그 이야기가 맞는 걸까.




 ― 너랑 여기에서 처음 마주한 날에,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너무 불안했어. 네가 어렸던 그 날에도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엄마한테 말했더라면 신고가 더 빨랐을 테고. 그럼 넌 더 일찍 구조될 수 있었던 거잖아. 근데 이번에도 내가 늦은 걸까봐 진짜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다행히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고도 널 거기에 혼자 두기 싫더라. 내가 밤새도록 거길 지킬 수도 없는데 만약 그 이상한 사람이 다시 오면 그땐 어떡해.


“…….”


 ― 난 사실 무심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 내가 개입되지 않은 일에는 크게 관심도 없고 솔직히 잘 기억하지도 못해. 악의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원래 천성이 그래. 별로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다정하지도 않아. 그러니까…네가 단지 내 옆집에 사는 동갑내기라서 처음 알게 된 날부터 집 안으로 들이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냥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이 너라서 그랬던 거야. 난 아홉 살의 그날로부터 네가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사는 데 어떻게 한번을 안 마주칠까, 그런 원망 아닌 원망도 많이 했었어.




  …어쩐지. 아무리 위험에 처한 사람이라 해도 분명 처음 본 낯선 사람인데 왜 그렇게까지 다정한 것이며 또 어떻게 집 안까지 들일 수 있는 건가. 좀 이상하다 싶었어. 정택운은 왜 처음부터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멍충이 같이.




― 그리고 너, 이홍빈 이라는 그 사람이랑 너무 가까이 붙어있지 마. 스킨십도 하지 마. 그래 나 질투하는 거 맞고 쪼잔 하다고 말해도 할 말은 없는데. 내가 더 먼저 너를 봤고 또 먼저 알아봤는데. 나보다 더 어른이 돼서 너를 알게 됐다는 이유로 너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게 솔직히 너무 짜증나고 싫었어. 그건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무 자주 보지 마. 내가 먼저였는데. 걔보다 내가 더 먼저 너 좋아했는데. 내가 먼저였어…. 내가 먼저였다고.




  술에 취해 말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웅얼웅얼 거리는 정택운의 목소리가 너무도 달고 좋아서,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의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베개를 꼭 끌어안고 혹여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너는 그동안 내게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내가 그때 그 아이였어. 너를 구한 사람이 바로 나야. 나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혹시 내가 잔뜩 헤집어진 그 기억으로 인해 또 다시 꽁꽁 숨어 버릴까 너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혼자 가슴에 묻어야 했을까. 그럼에도 끝까지 말하지 않고 참아줘서 고맙고 또 혼자 마음고생하게 만들어서 미안했다.


  정택운은 설마 홍빈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홍빈이가 내게 유난스러울 때가 종종, 아니 자주 있으니까. 그럼 그는 내가 홍빈이를 연애 상대로 보고 있다고 오해한 걸까. 어째서? 내가 아무런 경계심도 의심도 없는 그런 무방비한 상태로 내 집에 들였던 유일한 사람이라서? 가족이잖아. 가족한테는 원래 그렇잖아. 홍빈이는 나한테 그런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그런데 내게 대놓고 묻지는 못하고 혼자 화내고 고민하고 질투하고 심각해지고, 그랬을 정택운을 생각하니 나는 그런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그 비밀 이야기들을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내게 쏟아내던 정택운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그대로 잠이 든 건지 스피커 너머로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늘한 고양잇과 동물을 닮은 정택운의 그 하얀 얼굴이 잠이 들었을 때 얼마나 아기 같은 얼굴로 변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정택운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바로 옆집인데. 네발자국만 가면 네가 있는데. 지금 벨 누르면 문 열어주려나. 하지만 곧 술에 취한 상태니 아무리 벨을 눌러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기억해내고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 대신 아침이 오자마자 정택운의 집의 벨을 눌러 그의 잠을 깨워서 잔뜩 놀려줘야겠다. 네가 오늘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해서 나한테 전화한 거 기억나느냐고. 그때 취중진담으로 내게 뭘 고백했는지 알고 있느냐고. 그 고백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설렜는지 아느냐고. 어린 날의 악몽으로부터 나를 구한 사람이 다름 아닌 너라서 사실 내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 너는 혹시 알고 있느냐고. 


  다 말해줘야겠다. 나를 또 다시 다치게 할까 겁을 먹고 항상 가슴에 묻어두기만 했었던 그 수많은 말들을, 오늘 내가 먼저 해야겠다. 덩치만 큰 그 아이 같은 사람을 내가 먼저 안아줘야겠다. 여전히 스피커 너머로는 정택운의 안정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아기 같아. 이대로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끊지 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정택운은 나와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내게 더 가까이 닿지 못하는 것에 늘 안타까워했었다.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에도, 날씨가 좋아 드라이브를 하고 싶을 때에도,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자고 말할 때에도. 그는 집 밖으로 나가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내게 말하는 것에 대해 늘 주저했었다. 우주의 생일 날 내가 사람이 많은 놀이공원에 갔을 때 공황발작을 일으킨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사실 정말로 그것들을 나와 하기를 원한다면 난 충분히 져줄 수도 있었는데. 충분히 그런 마음이 있는데.


  정택운은 내게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길의 통로에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 나와 같이 저 밖으로 나가자. 내가 있으니 너는 전혀 위험하지 않을 거야. 만약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있으니까 너는 다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손을 망설임 없이 잡을 것이다. 위험해도 네가 있으니 나는 다 괜찮을 거라는 그 말을, 나는 지금 너무도 믿고 싶어 졌으니까. 누구나 쉽게 다 할 수 있는 그런 작은 일들조차 너는 먼저 말하지 못하니 이제는 내가 해야겠다. 사소한 거라도 늘 같이 하자. 네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내게 원하던 그것들, 이제 내가 다 이루게 해줄게.


  나는 이제 언제까지고 나를 꽉 틀어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아홉 살의 노란 방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그걸 정택운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어떤 날이 온다고 해도 나를 끝까지 놓지 않고 잘 잡아줬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언젠가는 그곳에서 완전히 발을 뺄 수 있지 않을까. 그 노란 방에서 완벽히 탈출하게 되는 날, 내가 잃어버렸던 그 색들도 다시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걸어본다.


  나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핸드폰을 귀에 더 가까이 대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 탁상에 있는 작은 스탠드 하나만을 켜둔 채 방의 불도 소등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불을 끄고도 잠을 설치지 않게 되었다. 이것도 너로 인해 내게 찾아 온 소중한 변화겠지.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부터 집으로 찾아와 벨을 누르는 나를 보고 놀라고 또 내가 전할 말들에 한 번 더 놀랄 정택운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으니까.



아니 사실은 그냥. 그냥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으니까.















fin. 20161106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한 모든 것들이 오늘만은 다 네 것이 되길.

택운아, 생일 축하해.



2016 택공웹진 ‘Leo's gun’에 참여한 글입니다.

http://leoontop1110.web-b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