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nning flow

Great melt 下

2017. 7. 27. 02:42











Great melt 下

이홍빈

차학연













“…입맛이 없어?”

“어. 아침이라 그런가. 컨디션이 영 별로네.”

“감기 걸린 거 아니야? 너 지금 안색 되게 안 좋은데.”

“누가 이런 한여름에 감기를 걸려.”




  누구긴. 어제 비 맞고 들어왔으면서 거기에 차가운 물로 샤워까지 한 바로 너 같은 사람이지. 이홍빈은 밥알을 몇 번 깨작거리는가 싶더니 그마저도 곧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하루 사이에 얼굴이 제법 많이 상해 있었다. 낯빛은 창백하니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의 것이었고 입술도 까칠하게 말라있었다. 그러게 아무리 여름이여도 그렇지 비까지 맞아놓고 찬물로 샤워는 왜 했대.




“다 먹고 그냥 두고 가. 내가 이따가 치울게.”




  이홍빈은 그 말을 끝으로 결국 의자에서 일어나 그대로 주방을 벗어났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했을 식사를 정작 요리를 한 본인은 한입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도 굶지 않았나. 평소의 이홍빈은 뭐든 알아서 똑부러지게 잘 하는 편이라 내가 딱히 신경 쓸 부분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의 심각한 컨디션 난조가 내 눈에도 뻔히 보이는데 그대로 혼자 두고 나가야 한다는 게 어쩐지 계속 마음이 쓰였다. 원래 아플 때는 누구라도 한명은 옆에 있어줘야 하는 거잖아.




“…나 갈게.”

“어. 다녀와. 못나가겠다. 미안.”

“아니 됐어, 나오지 마. …쉬어, 그럼.”




  아마도 지금 그의 몸 상태라면 아주 일상적인 소음들조차도 무척 거슬리고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방에서 쉬고 있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이홍빈은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출근하는 내게 배웅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걸으면서 핸드폰 보지 말고 길 조심해. 특히 사람 조심. 그렇게 참 살갑게도 말한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일이라 사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얘가 왜 이러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도 날짜를 보내고 시간을 더하니 점점 익숙해졌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이렇게 그의 닫힌 방문 앞에서 마치 속삭이듯 조심스럽게 건네야 하는 인사가 조금은 아쉽기까지 했다.


  이홍빈은 어제 버스 정류장에서 친형과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는 밤새 잠 못 이루고 한참을 뒤척였다. 몸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느라 이불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고해성사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내쉬던 한숨은 이미 그 횟수를 셀 수조차 없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순간만큼은 위로에 서툰 내가 조금 원망스럽기 까지 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서툰 위로 같은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홍빈을 만난 이후로,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고 해도 그저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지언정 상처 입은 마음은 누군가로부터 분명히 치유가 된다. 늘 혼자이기만 해서 아파도, 다쳐도, 그냥 제 스스로 낫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몰랐던 내게 세상에는 ‘위로 ’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이홍빈은 내게 그걸 가르쳐 주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그 방의 얇은 가벽 너머에는 내가 있었다는 것을, 이홍빈은 혹시 알고 있었을까. 너와 함께 잠들지 못하면서 밤새도록 이어진 네 한숨소리를 나도 쭉 같이 듣고 있었다고. 나는 비록 어떤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고 또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지만 네가 내게 가르쳐준 그 방법대로. 얇은 벽 너머 너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그렇게 기척 없이 있어주는 것으로 네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나는 밤새 그렇게 바랬노라고.




“계속 그렇게 문 앞에 서 있을 거야? 그러다 지각해도 난 모른다.”




  문득, 이홍빈이 어제 버스에 그대로 두고 내렸던 우산이 떠올랐다. 네 형이 네게 건넨, 네가 끝내 두고 내려버린 그 진심.


  내가 과연 잘한 걸까. 이홍빈이 두고 내린 그 진심을 내가 대신 갈무리 한 게 정말 잘한 일일까. 이홍빈의 선택대로 그냥 그렇게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가버리게 둬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래 어쩌면, 내가 그의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그에게 우산을 돌려주면서 그 날의 일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리게 될 테니까. 위로 부적격자인 내가 자칫 네게 위로가 아닌 그저 보기 싫은 흉을 떠안기게 돼버릴까, 그게 조금은 겁이 났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집 안은 어째서인지 온통 어두컴컴했다. 그래서 나는 이홍빈이 집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줄로만 알았다. 아마 이홍빈의 방, 굳게 닫힌 방문의 안쪽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이홍빈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끝내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으리라. 그는 외출을 한 것이 아니라 햇빛이 서서히 거두어지고 어둠이 완전히 내릴 때까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둘이 뭐 당번 정했어? 돌아가면서 대체 나한테 왜들 이래? …난 형이 미워. 우린 왜 하필 이렇게 혈육으로 엮여서 평생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걸까. 그런 생각도 했어. 근데 한 번도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어쨌든 서로한테 유일하게 이어진 끈 같은 거잖아. 그걸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 사람은 이제 나랑 아무 상관없어. 형도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돼. 나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고. 형이 그랬잖아.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애정이 너무 간절해서 그냥 착각한 거라고. 그리고 형이 결혼할 생각 같은 거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도 알아. 그 사람 목적을 형이 먼저 파악하고 나한테서 떼어내 준건 나도 고맙게 생각해. 


…정말 끝까지 잡아떼면서 끝내 피해자인 척 하는 걸 보고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했어. 그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까 진짜 환멸이 나더라. 난 대체 뭘 지키고 싶어서 그렇게 혼자 아등바등 했나 몰라. 결국 다 이렇게 될 거였는데. 어쨌든 고마워. 아주 큰 일 하셨어.


근데 형. 난 사실 그런 거 처음부터 다 상관없었어. 누군가의 애정이 너무 간절해서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한 거였어도. 난 그냥 내 손에 그게 쥐어져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였는지도 몰라. 값싼 동정 같은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그 여자가 나를 갉아 먹는다고 했었지? 아니. 나를 지금 가장 좀먹게 하는 건 형이야. …왜 하필 형이야? 너는 왜 하필 내 형으로 태어났어? 왜 내 맘대로 원망조차 못하게 만드는 건데….”




  모든 진실을 반드시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원래 진실이라는 것은 아직 열어보지 않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반드시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홍빈이 내게 먼저 말을 해주지 않는 이상 나는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진실을 이런 식으로 직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고한 왕자님의 또 다른 이면을 오직 혼자만 훔쳐 본 기분이었다.




“찾아오지 마. 집은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거 알아. 그런 거 하나 알아내는 것쯤이야 형한테는 어린애 손목 비트는 것만큼 쉽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 오지 마. 지금 형 얼굴 보는 거 힘들어. 그 이유가 고작 그런 사람 때문이라는 것도 솔직히 비참하고 쪽팔려. 고작 그딴 이유로 형을 보기 힘들다는 게, 그게 너무 힘들어 나는. 그러니까 오지 마.


내가 어디에서 뭘 하든, 어떻게 지내든, 형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기다려. 이번에는 형이 날 좀 기다려봐. 누군가를 아무 기약도 없이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일인지 이참에 형도 좀 겪어봐. 내가 머리카락조차 찾을 수 없게 꼭꼭 숨어버리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이홍빈의 방,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어쩌다 듣게 된 그의 이야기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쓰고 괴로워서 그대로 삼킬 수도, 차마 뱉을 수도 없었다. 아무런 개입이 없는 지극히 타인인 내게도 이정도인데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홍빈의 심정은 어떨까. 감히 상상조차도 쉽지 않았다. 주인공이 마냥 행복하기만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지만 결말까지도 끝내 비참하다면. 그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이홍빈은 통화를 끝냈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홀로 무거운 고요를 유지했다. 불이 꺼진 어두운 집 안에 다시 불을 밝히는 게 나는 어쩐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겉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앉아 깜깜한 벽만 바라보았다. 이 너머에 이홍빈이 있는데. 방문만 열면 바로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데도 오늘따라 그저 한없이 멀어 보이기만 했다. 




“왔으면 기척을 내지 왜 그냥 들어 가냐.”

“……알고 있었어?”

“방 문 앞에 그렇게 한참을 서있는데 어떻게 몰라.”

“…어. 그러네.”

“밥은.”

“그냥 대충. 넌?”

“나도 그냥 대충. 미안, 아침에도 그렇게 보내고. 내일 맛있는 거 먹자.”

“괜찮아. 별로 신경 안 써도 돼.”




  겉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긴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었을 때, 벽 너머에서 이홍빈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최대한 소리 안 나게 들어온다고 들어왔는데도 쓸데없이 귀가 밝은 이홍빈 때문에 영 실패였다. 이홍빈은 내가 방문 앞에 서서 통화내용을 다 들었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자기의 눈치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눈치보다는, 그냥 신경이 쓰이는데. 그것도 엄청나게. 그리고 나도 그가 오늘 하루 종일 뭘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침에 보니까 얼굴도 많이 상했던데. 약은 제대로 먹었을까. 신경이 쓰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형 네가 좋아하는 내 잘생긴 얼굴이 지금은 너무 못생겼어. 그러니까 못나가겠다. 미안.”

“뭔 소리야. 그리고 너 아무한테나 그렇게 미인계 쓰는 거 아니랬지.”

“나한테 차학연이 아무나는 아니지. 그리고 내가 미인계 쓰면 넘어오기는 하나?”




  넘어오지 그럼. 그거 보고 안 넘어오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 아니. 이게 아니고. 나는 이홍빈과 대화를 이어갈수록 뭔가 그의 페이스에 자꾸 말려드는 기분이 들어 순간 굉장히 억울해졌다. 이홍빈이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고 우리는 지금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 그것도 전혀 모르겠고. 근데 쟤는 그걸 신경이나 쓰고 있을까 그것도 궁금한데 그 궁금해 하는 것도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묘하게 자존심 상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다. 이홍빈이 이 집을 나가는 날도 이제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심란했다.


  그는 정말 이대로 그저 한여름 밤의 꿈으로만 남는 걸까. 나는 어쩐지 그게 조금 싫었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만들어진 꽤 괜찮은 인연이었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그뿐이라 여겼던 내 마음이 이제는 그러기가 싫어졌단다.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싫으니, 이제는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고 한다.


네게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나는 그 무엇이든 되고 싶다고.





  다음 날 내게 맛있는 걸 먹자던 이홍빈은 무려 꼬박 이틀하고도 반나절을 앓았다. 여름날의 심장부에 기척도 없이 찾아온 지독한 열병이었다. 한참이나 늦어버린 사춘기를 이제야 맞이한 것처럼 이홍빈은 그 성장통 같은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이렇게 지독하게 아프고 나면 네게 어떤 무언가가 지금과는 다르게, 조금은 나아져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높은 열에 들떠 정신이 없어 보이는 이홍빈의 옆을 나는 한시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잠이 안 와?”

“뭐?”

“잠이 안 와? 형 너 요새 밤마다 계속 뒤척이잖아.”

“그냥. 더워서 그래.”




  이홍빈은 뜨거운 햇빛이 자글자글 들끓는 한여름 날, 지독한 감기를 앓고 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인지 이전보다 살이 훨씬 내렸다. 하지만 오늘은 다행히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야윈 얼굴은 여전히 안쓰러웠지만 그 지독한 열병을 계기로 그는 뭔가 마음정리를 끝낸 사람처럼 조금은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홍빈이 이제 이곳을 떠나 영국으로 가게 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구나. 나는 그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 그것을 어렴풋이 예감했다. 그래서일까.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혹시 나한테 감기 옮았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더위 먹었나보지 뭐.”

“에어컨 샀잖아. 왜 안틀어?”




  이홍빈은 이번 달 월급을 받자마자 바로 에어컨을 샀다. 그것은 곧 그가 이 집에 온지도 어느새 몇 달이나 지났다는 말이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났으니, 이제 몇 주 뒤에는 가는 건가. 어쩌면 몇 주가 아니라 며 칠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름이 갈 때까지는 있었으면 좋겠는데. 비싼 에어컨도 샀는데 이왕이면 실컷 써 보고나 가지. 아. 에어컨은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줬으니까 마지막으로 주는 고양이의 보은 뭐 그런 건가. 솔직히 이홍빈이 고양이는 아니지. 호랑이 새끼면 또 모를까. 




“형. 차학연.”

“…어? 어. 왜.”

“에어컨 틀었다. 이제 안 덥지? 그러니까 정신 놓지 마.”

“에어컨도 사줬으니까. 이제 갈 거야?”

“뭐? 어디를 가? 이 더운 날 나보고 어딜 가라고.”

“…됐다.”




  이홍빈은 언젠간 여기를 나가 또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을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모습을 상상해봤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이홍빈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조금은 웃긴다. 내가 이홍빈한테 뭐라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이홍빈에게 어떤 뭔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우리가 나눠 가진 시간은 충분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내가 여전히 그대로인 건, 어쩌면 우리의 페이지는 처음부터 그냥 이 정도쯤에서 적당히 끝이 날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좀 잘래? 형 너 자고 나면 컨디션 괜찮아지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왜 몰라? 난 다 알아.”

“그러니까 어떻게 아냐고.”

“다 알아. 다 아는 수가 있어.”




  묻고 싶었다. 이홍빈에게. 너는 왜 그렇게 늘 여유가 넘치는 건지. 내가 있는 이곳을 떠나 다시 혼자가 되어도 괜찮은지. 네 옆에 내가 없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매일 날짜를 보내고 시간을 더할수록 그가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고 바란다. 그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그가 언제 어떻게 이 집을 나갈까, 오직 나 혼자만 이렇게 마음 졸이고 있는 건지.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마저 완전히 버리게 만드는 것은 역시, 이홍빈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끝내 이홍빈에게 건네지 못한 내 진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TV를 보는 이홍빈을 거실에 두고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말처럼 좀 자고 일어나면 컨디션이 나아질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과부하가 되어 그것이 몸에까지 신호가 올 때 종종 써 먹던 방법이었고 효과도 어느 정도는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해서 기분이 나아진다한들 그건 아주 잠시 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말이다.


  아주 당연히, 잠은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보려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홍빈 얼굴이나 좀 더 볼 걸 괜히 들어왔나, 잠시 그런 후회를 했다. 거실에서 희미하게 흘러 들어오던 TV소리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홍빈도 방으로 들어갔겠지. 얼굴이나 좀 더 봐둘 걸. 역시 그 후회가 또 다시 밀려왔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마냥 심해지는 열대야로 잠들기가 더 힘들었다. 땀에 달라붙는 옷들과 다리에 감기는 이불이 거슬려 자꾸 몸을 뒤척거렸다.


  나는 원래 잠귀가 밝은 편이었고 아주 오랫동안 불면증도 앓고 있었다. 사실 잠을 못자도, 실컷 뒤척여도 어차피 이 넓은 집에는 나 혼자 뿐이니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 벽 너머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있다. 내가 잠을 못자도, 뒤척여도 당장이라도 이름을 부르면 이 방으로 건너올 수 있는 누군가가 저 벽 너머에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아. 오늘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어느새 내 마음 한 구석의 어딘가에 각인처럼 깊이 새겨졌다. 그래. 이홍빈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고 하루하루가 너무 좋았다.


  나는 이제 곧 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처럼 혼자 일어나고 혼자 밥을 먹고 또 혼자 TV를 보다가, 그렇게 다시 혼자 잠이 들 것이다. 이홍빈이 이 집에 들어오기 몇 달 전의 그 모습으로 완벽히 돌아가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순서였고 어차피 처음부터 그렇게 될 일이었다. 당연한 건데. …왜 나는 그게 그저 당연한 일이 돼버리는 게 이렇게나 싫을까. 마른 한숨을 마치 토해내듯이 푹, 길게 내쉬었다. 몸의 방향을 바꾸면서 다리에 감겨있던 이불이 또 다시 사부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When Sunny Day It's Fine Day Hello Hello Hello. Where Am I and Are You It's Dark I Can't See You.”




  오늘도 이대로 하얗게 불태우는 건가, 그저 무거운 한숨만 푹 내쉬고 있었을 때. 한 방의 경계를 나눈 얇은 가벽 너머에서, 짙은 어둠이 내린 적막한 이곳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중저음이 내가 누워있는 이곳 침대 위로 잔잔히 흘러 들어왔다. 마치 자장가를 불러주 듯 나긋하게 부르는 멜로디가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나를 참 다정히도 토닥여주었다.




“하나 둘 사라진 망설였던 나의 Step. 다시 널 불러 Hey You Hey You Hey You.”




  내게 잠이 안 오냐고 물었었다. 이홍빈은 내가 며 칠 째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같이 사부작거리는 이불소리도. 내 한숨소리도. 아직 전하지 못한 진심을 홀로 끌어안은 채 고민하는 그 순간순간의 모든 소리들을, 이홍빈은 저 너머에서 모두 다 듣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어. 이홍빈은 내게 그 말을 하면서 참 달짝하게도 웃었다. 그 미인계 곱게 접어서 넣어둬. 그렇게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면서도 나는 사실, 그 예쁜 보조개와 나를 묘하게 위로하는 것 같은 다정한 말에 아무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었다.




“Hello Hello Hello. 너라는 별이 빛나는 곳 그곳이 바로 나의 우주 언젠가 그 별이 빛을 잃어도.”




  네가 내게 가르쳐준 그 방법. 이홍빈은 지금도 계속 뒤척이는 나를 푹 재워주려고 마치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혼자 허밍을 하듯 그렇게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참 이홍빈 다운 배려이자 또 오직 이홍빈만이 할 수 있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는 영국에 가는 것이 해외여행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미 엉킬 대로 엉켜버린 형과의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그런 도피와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졸업이 가까워진 학교까지 휴학했으면서. 어디를 가든 여기보다는 좋을 거라고 했으면서. 거기가 좋으면 그냥 쭉 눌러 살 거라고 했으면서.




“꺼져가는 너를 찾아서 나의 빛을 비춰줄 거야 With Shinny Light of Mine.”




  그렇게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 내가 옆에 없는 곳으로 당장 떠난다고 해도 이미 너는, 행복할 준비를 모두 마쳤으면서. …그러면서, 어떻게 너한테 내가 우주야?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쩐지, 울고 싶은 밤이었다.





  결국 그대로 밤을 새고 이홍빈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집에서 나왔다.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은 셔츠는 하필 다림질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 거기에 아직 마르지 않아 축축한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셔츠의 어깨 부분이 젖기까지 했다. 수면부족으로 머리는 지끈거렸고 공복으로 인해 속이 쓰렸다. 아침부터 아주 총체적 난국이네.


  출근을 하기에는 평소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각이었다. 덕분에 항상 급하게 뛰어가고는 했었던 지하철역을 오늘은 제법 느긋하게 갈 수 있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 마냥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걸음으로 터덜터덜 지하로 내려갔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바로 회사 앞에 와 있었으면 좋겠네.


  이홍빈은 지금쯤 일어났을라나. 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번 잠들면 워낙 깊게 자는 편이라 아마 내가 나가는 소리도 못 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이홍빈은 내가 자기 때문에 일부러 출근 시간까지 앞당겼다는 것을 모를 리 없으니까. 아침부터 실랑이를 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역시 배웅인사를 받지 못하고 그냥 나온 것은 좀 많이 아쉬웠다. 얼굴 볼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하루 종일 무슨 정신으로 일을 한 건지. 나는 마치 블랙아웃 상태라도 빠진 것처럼 기억의 부분 부분이 퍼즐처럼 조각나 있었다. 차대리 무슨 일 있어? 평소 사소한 일에도 꼬투리를 잡아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사장마저 오히려 염려의 말을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누가 봐도 반쯤 정신이 나가있어 그리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평소였다면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그 말에도 내게 눈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정신머리가 나가 있는 것도 나쁘진 않군. 정작 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




  머피의 법칙인가. 한번 따라붙은 불운은 하루의 끝이 올 때까지 계속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총체적 난국이더니 결국 퇴근길마저도 가관이었다. 태양이 자글자글 끓는 그 여름  날의 날씨는 아니나 다를까 또 철없는 어린애 마냥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다만 내가 하루 종일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런 얼빠진 상태에 놓여있어서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너무 더워서 차라리 비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맞지만, 적어도 그날이 오늘은 아니었는데.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머리가 아팠고 속이 쓰렸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지도, 의욕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태. 무기력. 우울. 지금의 내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단어들이었다.




“…어?”




  오늘 하루 종일 나는 나태하고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굳이 스스로 자각 하지 않아도 그 이유가 이홍빈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넋이라도 있고 없고의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드디어 헛것을 보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로비를 지나 회전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려 이홍빈이 우산을 쓰고 나를 기다리는 풍경이 펼쳐질 리가 없지 않은가. 네이비색 장우산을 쓴 이홍빈은 회전문 앞에서 그대로 두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이내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왔다.


  오늘 아침 그에게 배웅인사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그렇게 한이 돼서 이런 환상까지 보이는 걸까. 내가 그렇게까지 이홍빈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나.




“형. 차학연.”




  환상만 보이는 게 아니라, 이제는 무려 환청까지도 들린다. 그 정도였나.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지금 이홍빈이 그렇게 보고 싶은 건가. 


…나 이홍빈 좋아하나.




“뭐 그런 귀신본 얼굴이야? 우산 없을까봐 회사 앞까지 데리러 온 사람 섭섭하게.”




…이홍빈.

좋아하나봐.

나.




“오늘 오후부터 비 다시 온다고 우산 챙기라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아침에 나 깨우지도 않고 그냥 갔잖아.”

 



  환상이라고.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그만 환청까지도 들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이홍빈은, 진짜 이홍빈이 맞았다. 정말로 나를 데리러 회사 앞까지 온 것이다. 나 우산 없으니까 데리러 와 줘.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가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써가며 올 수 있는 사람이냐. 나는 그것 또한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홍빈은 지금 이렇게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내가 비를 맞을까봐. 내게 우산을 씌워주려고. 이렇게, 와주었다.



  

“형 너 지금 나 피해? 나 뭐 잘못했어?”

“…피하긴 누가 피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응. 아니야.”

“진짜로?”

“진짜로.”

“…그래. 차학연이 아니라면 아닌 거지 뭐.”




  이홍빈은 여전히 귀신이라도 본 냥 멍한 내 얼굴을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그리고 곧 내 손목을 잡고 살짝 끌어당겨 나를 우산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남자 둘이서 우산 하나를 쓴 모습은 어쩌면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이홍빈과 나는 좁은 우산 아래에 아주 가까이 붙어 섰다. 서로의 한쪽 어깨와 팔이 마주 닿았다. 우산 안으로 채 다 들어오지 못한 다른 한쪽은 당연하게도 빠르게 젖어갔다.




“비 계속 온다. 빨리 집에 가자.”




  이홍빈은 나와 가까이 닿아있던 팔을 들어 그대로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우산을 고쳐 들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웅덩이에 가득 고인 빗물들이 발아래에서 찰박 거렸다. 아마 평소였다면 바지와 신발이 다 젖는다고 투덜댔을 테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뭔가 로맨틱했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빗물을 마음껏 튀기며 춤을 추던 어느 영화의 한 장면. 머리와 옷과 신발이 다 젖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도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던 그 주인공들을 뭔가 지금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와 함께 있기 때문에 뭘 하든지 그저 다 좋은 그런. 그런.


  나는 이홍빈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섰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틈 없이 밀착해 있는 상태였지만 조금 더,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가 우산 안으로 더 가까이 들어오자 이홍빈은 내 잡은 어깨를 더 꽉 감싸주었다.




“추워?”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떨어?”

“…아니, 추운가. 추운가보다. 응. 나 지금 추운가봐.”




  물론 춥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가까이 붙어있는 탓에 땀이 날 만큼 조금 더웠다. 추운 게 아니라. 사실은 너무 좋아서. 이홍빈과 같은 우산을 쓰고 이렇게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것처럼 꼭 붙어서 걷는 게 마치 연인 같아서. 그게 너무너무 좋아서 자꾸 떨렸다. 자꾸 막, 떨렸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빨리 가자. 많이 추워?

“응. 많이 추워.”

“여름감기 절대 무시할 거 아니야. 나 진짜 죽다 살아났어.”


 


  순진한 이홍빈. 가끔은 조금 단호하다 싶을 만큼 그렇게 똑부러지는 애가 이럴 때는 묘하게 순진하다. 아니면 이미 다 알면서도 그냥 속아주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네가 나를 걱정하는 게 좋아서 내 안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던 욕심 많은 아이가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그 앙큼한 거짓말을 눈감아 줄만큼, 너도 나와 같이 있는 이 시간이 좋다는 거잖아.


  이홍빈은 결국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로 뛰듯이 들어가 수건을 꺼내 내 젖은 팔과 머리끝을 닦아주었다. 정작 우산 안으로 다 들어오지도 못했던 제 한쪽 어깨와 팔은 나보다 더 많이 젖어있는 것도 모르고. 이홍빈은 지금 감기가 나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사실 조금 걱정이 됐다. 나를 데리러 와준 게 좋으면서도, 그가 또 다시 아플까봐 너무 걱정됐다.




“나보다 네가 더 많이 젖었어. 너도 닦아.”

“샤워부터 할래?”

“응. 그러니까 너도 빨리 닦아.”

“욕조에 물 받아줄게. 형 너 좋아하는 입욕제도 풀어줄게.” 

“이홍빈.”

“…….”

“…홍빈아.”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홍빈도. 그리고 나도. 그래서일까. 가끔 이렇게 이름을 부를 때면 마치 그것이 어떤 주문인 냥 행동을 멈추게 된다. 행동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숨을 멈춘다. 나도. 이홍빈도. 서로에게 어느새 자연스럽게 물이 들 듯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매일 밤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뒤척거려서 자꾸 신경 쓰이게 하고.”

“홍빈아.”

“그동안 계속 아파서 형 너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그래서 오늘은 아침도 차려주고 배웅인사도 해주려고 했는데. 근데 나 깨우지도 않고 그냥 혼자 가버리기나 하고.”

“…….”

“피하기나 하고. 근데 피할 거면 날 그렇게 보지라도 말든가.”

“…피한 적 없다고 했잖아.”

“피한 적이 없어? 그래. 없다고 치자. 그럼 형이 날 볼 때 어떤 얼굴인지는 알아?”

“…….”

“내가 아주 애틋해 죽겠다는 얼굴이야.”

“……!”

“…마치 날 사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홍빈!”




  이홍빈은 마른 한숨을 길게 한번 토해냈다. 앞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듯 만지다가 그대로 쓸어 넘겼다. 자꾸 입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한번 핥았고 또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무언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그렇게, 그 고운 미간을 좁혔다.




“차학연.”

“…….”

“너 진짜, 왜 자꾸 신경 쓰이게 하냐.”




  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너 왜 자꾸 신경 쓰이게 하냐. 이홍빈의 그 말이 내게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그가 과연 나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겁이 나서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가 이대로 도망치듯이 훌쩍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내 바보짓이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아닐까. 그 짧은 시간동안 정말 수천가지, 아니 수만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다시는 못 보는 거면, 그땐 정말 어떡해야해.




“이것 봐. 지금도 툭 건드리면 바로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잖아. 날 제대로 보지도 못하잖아.”

“…홍빈아. 홍빈아.”

“…제발, 내 이름 좀 그렇게 부르지 마. 네가 나를 그렇게 부를 때마다 내가 얼마나! 내가 얼마나…!”




  어째서일까. 이홍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려버릴 것처럼 눈시울을 잔뜩 붉혔다. 나는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애틋해서 내 품에 꼭 안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아.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기가 무섭게 이홍빈은 꼭 그 거리만큼 뒤로 물러서 버렸다. 순간 이유 모를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네게 정말 누구보다도 위로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내가 널 울게 만드는구나. 그게 아닌데. 난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난 싫어. 또 동정심 같은 걸 사랑이라고 착각해서 나 혼자만 놀아나는 거. 그거 이제 그만할 거야. 너무 힘들어. 힘든 게 죽기보다 싫어, 이제.”

“…….”

“…근데 이미 틀린 것 같네.”

“……!”

“내가 그렇지 뭐.”




  이홍빈은 그대로 내게 등을 돌려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하고 문이 세게 닫혔다. 그는 또 다시 히키코모리처럼 몇날 며칠이고 방 안에 틀어박힐 것이다. 어쩌면 그곳이 그에게는 누구의 침입도 있을 수 없는 요새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나라도 감히 그 선까지 넘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떠날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이 바로 내 눈 앞,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잡아서도 안됐고, 잡아둘 수 있는 명분 또한 내게는 없었다.


그는 결국, 떠날 것이다. 정말. 정말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먼저 떠졌다. 비척비척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밥은 당연히 거르고 이홍빈의 배웅인사도 없이 집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나는 또 다림질이 덜 된 셔츠를 입었고 아직 덜 마른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져 셔츠가 젖었다. 그 모습이 지하철 유리에 그대로 비치는데, 내가 봐도 참 볼품없었다. 나는 이홍빈 없이는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인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홍빈은 나와의 그 일 이후로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있을 때 아무도 자기를 찾지 못하도록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홍빈도 아마 그렇게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곧 다시 나올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밥은 먹었냐고. 요즘 비도 자주 오는 데 우산은 잘 챙겼냐고.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얇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한숨소리를 듣고.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반드시 그럴 거라고, 정말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여느 날과 다름없이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이홍빈의 방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방음은 부실할지언정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선까지는 지키자 더니. 이렇게 문도 안 닫고 나가면 어떡해. 나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이홍빈의 방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내 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는 구조가 똑같은 방. 이홍빈의 방 안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방과 최대한 맞닿을 수 있도록 가벽 가까이에 옮겨둔 침대. 그와 꼭 어울리는 파란색 이불과 깨끗한 흰색 베개. 그리고 이홍빈의 깔끔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심플한 가구 몇 개. 네 방은 이렇게 생겼구나. 나와 밤새 대화를 나눌 때 너는 이 벽 가까이에 누워서 내 목소리를 들었겠구나. 난생 처음 와본 신기한 장소를 구경하 듯 그렇게 이홍빈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방 안을 배회하는 작은 먼지마저 따듯하게 느껴지던 그 공간이 순간 너무도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곧 그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끌고 왔던 큰 캐리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홍빈이, 떠났다.


  깨달음은 마치 교통사고의 벌침금과도 같았다. 너무 갑작스럽고, 그 대가가 너무 세니까. 왜 말도 없이 갔는지. 내가 출근한 사이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 꼭 그렇게 가야만 했는지. 이제 막 내 감정의 정체에 대해 깨달은 내게 이건 너무 가혹한 벌이 아닌지. 묻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 물을 수 있는 상대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곳에서 계속 나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차마 전할 수 없었던 그 진심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조용히 갈무리했다. 그가 버스에 두고 내린 그 우산처럼 끝내 닿지 못한 내 마음도 여기 이곳에, 이렇게 홀로 남겨졌다. 사실 많이 슬플 줄 알았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뻥 뚫려버린 것처럼 속절없이 몰려오는 공허함에 몸서리 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홍빈과 나는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다고. 우리의 엔딩은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너무도 더운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렇게 기척도 없이 사라질 것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홍빈의 방을 나와 방문을 천천히 닫았다. 오랜 시간 혼자서만 지내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쭉 방치되어 있던 창고 같은 공간. 내게 있어서 저 방은 그저 그것뿐인 것이다. 토해내듯 한숨을 몰아쉬었다. 익숙한 적막이 공간을 메웠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게 너무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거실로 나와 집 안을 크게 한번 둘러보았다. 바닥은 청소를 한지 얼마 안됐는지 매우 깔끔했고 세탁을 해놓고 그대로 널어두기만 했었던 빨래들도 모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순간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이홍빈 너는 정말 끝까지.


  잠깐 동안 머무는 손님이 오늘 돌아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된 것 뿐이다. 오랫동안 혼자 맞이한 내 고즈넉하고 조금은 적막했던 그 저녁시간의 풍경으로 다시 되돌아온 것뿐이다. 손님이 안전하게 잘 갔는지 조금은 궁금하겠지만 그것 또한 곧 까맣게 잊게 될 것이다.




“…….”




곧 까맣게, 모두 잊게 될 것이다.














― 오늘도 야근했어요?

“그렇지 뭐.”

― 형 그 정도면 진짜 워커홀릭이야. 일밖에 할 게 없어요?

“너 방금 되게 우리 엄마 같았어.”

― 아이고-. 어머니는 형이고요.




  하루에 한번. 많게는 두 번. 한상혁은 내게 그렇게 꼬박꼬박 전화를 건다. 거의 퇴근할 때 아니면 잠자기 전에 잠깐 목소리나 듣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어느새 몇 달이나 되었다. 약간의 잔소리와 조금의 뒷담화. 그리고, 넌 여자 친구 안 사귀어? 귀찮아요, 그런 거.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퇴근길이 적적하지 않아 좋기는 한데 솔직히 가끔 아주 조금은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한상혁은 나와 이홍빈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홍빈이 집을 나갔다고 했을 때 녀석은 한참동안 내 얼굴을 말없이 가만히 응시하기만 했었다.


‘이런 타이밍에서 이런 질문 좀 실례인 건 아는데요. 형, 괜찮아요?’

‘안 괜찮을 건 또 뭔데.’

‘…그래요. 형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죠.’


  …이홍빈이랑 똑같은 말을 하네. 곧 까맣게 모두 잊을 거라던 나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끝내 이홍빈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에게 차마 건네지 못한 채 갈무리 해야만 했던 내 진심은 언제 빗장을 풀고 뛰쳐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상혁아. 우리 술 마시자.’

‘괜찮다면서 웬 술? 그리고 형 술 잘 못하잖아요.’

‘네가 나 집까지 안전하게 잘 날라다 주면 되겠네.’

‘택시비 꼭 받아낼 거야. 나 나름 바쁜 사람이에요.’


  한상혁은 술을 마시는 내내 내 기분을 참 세심하게도 살폈다. 그냥 맘 편하게 술이나 실컷 마시자고 부른 거였는데 괜히 내 눈치만 보게 만들었나 싶어 조금은 미안해졌다. 사실 그렇게라도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었던 것 같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그랬었다, 그 때는. 그날 나는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고 한상혁은 나를 안전하게 집 안까지 잘 데려다 주었다. 아마 그날 이후로 녀석이 내게 매일 전화를 걸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입에서 무슨 말들이 나왔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났지만 다음날 해장을 하러 집으로 찾아온 녀석의 표정을 보니 대충은 알 것도 같았다. 네가 정말로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도로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지독한 여름은 이제 내년을 기약하는 안녕을 고하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척도 없이 훌쩍 떠나있을 것이다. 곧 완연한 가을이 될 것이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계절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고 언제나 그러했듯 나도 거기에 함께 휩쓸려 혼자 고요히 잘 살아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구겨진 셔츠를 입지 않는다. 말리지 않은 축축한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이 셔츠의 어깨 부분을 적시도록 내버려둔 채 지하철역까지 힘없이 터덜터덜 걷지도 않는다. 잠시 손님이 머물다 간 그 자리는 이미 까맣게 모두 잊고, 나는 이리도 잘 살고 있다. 가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얇은 벽을 멍하게 바라볼 때는 있었지만 그것도 정말 가끔이었다.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러니 이홍빈 너도 어디에 있든. 어디에서 무얼 하든. 누구를 만나든. …부디 잘 지냈으면 한다. 이것은 눈물과 함께 목구멍 깊숙이 꿀꺽 삼켜야만 했던 그 오래된 진심의 옆에 나란히 놓아둔, 내 또 다른 진심이다.


  도어락이 해제되는 맑은 기계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이제는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더위는 이미 저만치 물러가 있었다. 이홍빈이 고양이의 보은처럼 사주고 간 에어컨은 지나온 여름날 동안 한 번도 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생각날까봐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나중에는 전기요금이 무서워서 못 켰다. 나도 참 낭만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다. 참 지독히도 현실적인 사람이다.




“…….”




  신발을 벗으려는데 현관 앞에 못 보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상혁이가 와 있나. 아니다. 한상혁의 신발은 절대 저렇게 작지 않았다. 나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남자 운동화. 나보다 작은 사이즈. …나보다, 작은. 나는 순간 홀린 듯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또 홀리듯 이홍빈의 방문 앞에 섰다.


  오늘은 왔을까. 이홍빈이 매일 걷고 뛰고 눕는 그 영국이 이제는 지겨워져, 오늘은 오지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기대를 품고 방문 앞을 서성이던 희망고문의 날들이 낡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을 기어이 확인하고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목구멍 깊숙이 꾹꾹 삼켰던 그 수많은 밤들.


  이제 이홍빈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퇴근 후 꼭 방문을 열어보던 그 습관 같은 행동을 오늘은 어쩐지 하기가 망설여졌고 두려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번번이 허무한 기대로만 끝나고 말았던 일이 이제는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용기는 도저히 나질 않아 결국 두 눈을 꽉 감았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실어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감은 눈을 아주 느리게 떴을 때.




“……아.”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문을 열었던 용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또 다시 허무한 기대에 울음을 삼킬까 벌벌 떨어대는 그런 겁쟁이만 남아있었다. 다시 보고 또 다시 봐도,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이는 이홍빈이었다. 인사 한마디 없이 나를 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그 이홍빈.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순간마다 목이 꽉 메어와 행동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숨을 멈추게 만들었던. 내가 너무도 그리워했던, 그 이홍빈 이었다.


  이홍빈이 그렇게 떠난 후.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가끔 체한 듯 답답해지는 속이 너무 서러워 애써 울음을 꾹꾹 삼켜보기는 했어도 그것을 입 밖으로 토해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혼자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내내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던 눈물은 이홍빈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봇물 터지듯 그렇게 쉴 세 없이 흘러내렸다. 힘겹게 가둬두었던 진심들이 빗장을 풀고 쏟아져 나와 이제는 그만 닿게 해달라고, 그렇게 아우성이었다.


  열린 방문 앞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음을 토해내는 내 앞으로 이홍빈이 천천히 다가와 키를 낮춰 마주 앉았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봐야 하는데.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데.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를 않아 나는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껏 흘리지 못했던 눈물들을 지금 모조리 다 뽑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계속 울기만 했다.




“늦었네. 계속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어. 미안.”

“…….”

“…다시는 안 올 것처럼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린 주제에. 이렇게 다시 온 것도 미안.”

“…….”

“지금 나 엄청 많이 미울 거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자꾸 욕심내서 미안.

“…….”

“그냥 내가. 내가 다 미안해.”




  눈물로 한껏 얼룩진 얼굴이 어쩐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렇다 할 말도 못하고 여전히 울고만 있는 내 머리 위로 이홍빈의 손이 조심스레 올라왔다. 그리고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체온을 나눠주듯. 온기를 건네주듯. 이홍빈은 그렇게 나를 한참을 보듬어 주었다.




“울지 마. 뚝 그쳐.”

“누가 운다고 그래.”

“그래, 차학연 안 울어. 그러니까 울지 마.”

“…….”

“나 여기 있잖아. 이제 그만 울어.”

“…….”

“…난 누가 내 앞에서 우는 게 너무 싫었어. 아. 이 사람이 또 눈물로 나를 홀리려고 하는구나. 나를 그렇게 홀려서 잡아먹으려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형 너 우는 거 보니까 이상하게 막 미칠 것 같아. 내가 마치 내가 아닌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고. …울지 마. 울지 마, 차학연.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네가 다시 가라면 가고 여기 남으라면 남을게.”

“가지마. 가지 마, 이홍빈. 가지 마…가지 마, 홍빈아….”

“…그래. 그럴게. 아무데도 안 갈게. 그러니까, 그렇게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울지 마. 내가 뭐라고 네가 이래.”




  아무데도 안 갈게.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했는지. 네 입술에서 그 말이 나와 주기를 내가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애초부터 내게 자존심 같은 것은 없었다. 가지마. 내 옆에 있어줘.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그 진심을 처음부터 망설이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약한 이홍빈은 어쩌면, 그래 어쩌면 정말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순간의 망설임이 결국 그를 놓쳐버린 것 같아서 매일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들여다 볼 때마다 너무도 후회했었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이렇게 나한테 다시 와준 게 얼마나 가슴 벅차게 좋은지, 넌 아마 모를 거다.


네가 뭐긴.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홍빈이지.


  나는 이홍빈에게서 그토록 염원하던 대답을 들은 후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이홍빈에게 무너지듯 안겼다. 이홍빈은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더 깊숙이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다. 울지 마. 울지 마, 차학연. 나를 달래는 그 나직한 목소리가 너무 달짝하고 좋아서, 나는 이홍빈의 품에 가득 안겨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














  요즘 이홍빈은 잠이 늘었다. 집 안의 어딘가에 머리만 대면 바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본인의 말로는 시차적응 중이라는데. 아닌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좀 게을러 진 것 같은데. 그는 원래 잠이 많지 않은 대신 한번 자면 깊게 자는 편이었는데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제대로 푹 자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어디서든 자주 잠들고 또 금방 깨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홍빈이 잠을 자든 널을 뛰든 나는 아무렴 상관이 없었지만 문제는 자꾸 내방에 들어와서 잔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기만 들어오면 졸려. 이 방이 편한가봐. 형 너 나랑 방 바꿀래? 아니다. 그냥 여기서 같이 자는 것도 좋겠다. 방을 같이 쓰려면 더 큰 집으로 이사가야하나. 그것도 좋겠네. 이런 되지도 않는 소리를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어찌나 잘 하는지.


  이홍빈과 나는 이제 서로의 방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들어와서 바로 얼굴을 볼 수 있게. 진작 이러지 못했던 것을 이홍빈도, 나도 후회했다. 몇 걸음만 움직여도 서로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작은데서 뭐 그리 숨길 게 많다고 꼭꼭 닫아두고 살았는지. 왜 우리는 이전에 함께였을 때 서로가 더 가까이 닿고 싶어 했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밤이 새도록 얘기하기도 했다.




“차학연 냄새. 너무 좋아….”




  저 말은 과연 잠꼬대일까. 아니면 사실 이미 반쯤은 깨어 있는 게 아닐까. 이홍빈은 아직 잠에 취해 말끝이 질질 늘어지는 와중에도 매력적이기까지 한 그 중저음으로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참 잘도 했다. 나는 소파에 길게 누워 내 무릎을 베고 내 허리를 꼭 껴안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이홍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끔 이홍빈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만약 대천사 미카엘이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딱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물론 그 생각에는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잠든 얼굴이 이렇게나 천사 같은데. 혹시 모르잖아. 물론 이홍빈에게는 이 말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자기 잘난 걸 너무 잘 아는 닝겐들에게는 웬만하면 이런 말은 그냥 속으로만 하는 게 좋다.




“영국 갔다 오더니 뭔가 좀 느끼해진 것 같은데.”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게 뭐 어때서.”

“그건 그래. 좋은 거지, 그건.”

“응. 좋은 거야, 그건. 그러니까 난 차학연 좋아. 너무 좋아, 차학연.”




  이홍빈은 안고 있던 내 허리를 더 가까이 당겨와 두 팔 가득 꼭 끌어안았다. 그는 어쩐지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이렇게 조금 애가 된 것 같았다. 재채기와 간지럼을 전혀 참지 못하는 것처럼 내게 그렇게 애정을 참지 않고 마구 퍼부었다. 마치 잠꼬대 같은 저런 간지러운 말들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 특유의 러블리함을 듬뿍 담은 애정을 한껏 받는 나도 뭔가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라 묘하게 부끄러워졌다. 물론 내게는 그의 간지러운 표현들에 기꺼이 동참 할 수 있는 그런 뻔뻔함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잠이 덜 깬 이홍빈의 두서도 없이 나열된 저 말들이 그저 귀엽다고 생각하는 나도 답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겠다.


  왜 다시 돌아올 결심을 했냐는 내 물음에, 이홍빈은 잠시 내게 해줄 말을 고르는 듯 가만히 생각에 잠겼었다. 그리고 곧 입술을 떼고 이렇게 대답했다.


‘영국 참 좋더라. 눈을 어디에 둬도 그저 그림이고 장관일 만큼 너무 근사했어.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기분이 들떠서 하루 종일 다리가 아프도록 걷고 또 걸었어. 오길 잘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행복하지가 않더라고. 멋진 곳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이상하게 그 끝은 자꾸 허무하고 씁쓸했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나라에 와서 숙소 체크인을 하고 그 넓은 공간에 나 혼자 누워있는데. 순간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막 밀려오는 거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어. 근데 울 수 가 없었어. 내가 원해서 온 건데. 나 하나 편하자고 다 버리고 끝내 여기까지 온 건데. 그런 내가 울면 안 되는 거잖아. 그건 형 너한테도 너무 미안한 거잖아.


지내는 동안은 계속 날이 흐렸어. 비도 많이 왔고. 근데 비가 올 때마다 자꾸 여기가 생각났어. 그런 날이 점점 많아지니까, 혼자 일어나고 혼자 잠드는 게 너무 견디기가 힘든 거야. 온몸이 찌그러질 것 같은 외로움 때문에 매 순간순간이 너무 숨 막히고 괴로웠어.


…아니. 사실 이런 건 그냥 다 핑계야. 그냥. …형 네가 너무 보고 싶더라. 다시 너한테 가고 싶더라. 말도 없이 도망치듯이 그렇게 온 주제에 나 외롭고 힘들다고 다시 돌아오는 게 너무 비겁하고 재수 없다는 거 나도 아는데. 그래도 오고 싶더라. 형 네가 진짜 너무, 너무 그립더라.


나한테 가지 말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사실 여기 오는 동안 형 네가 나한테 꺼지라고 할까봐 속으로 엄청 떨었었어. 나 같은 거 이제 필요 없으니까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할까봐. 너무 무서웠어. …미안해. 너무 뻔뻔한 거 나도 아는데, 포기가 안 되서 미안해. 그냥 내가 다 미안해. 미안해….’


  이홍빈은 나직한 목소리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아주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때의 상황들을 다시 한 번 천천히 회상하는 것처럼 말은 이어졌다가 잠시 멈춰졌다가, 또 다시 이어지고는 했다. 그는 말을 하는 동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끝냈을 때는 결국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를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영국에 있는 동안 계속 이곳이 생각났고 내가 너무도 그리웠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마음은 이미 완벽히 다 녹았으니까. 내 옆에 아주 오래오래 있어달라는 그 오랜 진심을 그저 가슴에만 묻지 않고 이렇게 꺼내 보여줄 수 있도록 다시 와준 것만으로, 이미 모든 것은 충분했다. 나는 혹여 울음소리가 세어 나갈까 고개를 더 깊게 숙이고 숨죽여 우는 이홍빈을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다. 그가 얼굴을 묻은 내 왼쪽 어깨가 천천히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였던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홍빈의 양 볼 예쁜 보조개가 쏙 파이는 그 달짝한 웃음은 애초부터 나 혼자만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줘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홍빈의 눈물은 오직 나로 인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그가 울지 않기를 바라지만 꼭 울어야만 한다면, 그 이유는 반드시 나였으면 좋겠다고. 이홍빈이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았다. 지금의 이 뜨거운 눈물이 오직 나로 인한 것이라는 게, 가슴 벅차도록 좋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밥을 먹을 때. TV를 볼 때. 귀가를 했을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그저 고개만 살짝 돌리면 아주 가까운 곳에 서로가 있다는 것에 매일매일 가슴이 떨렸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혼자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게 가장 서로에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이제 그만 일어나. 너 점심도 안 먹고 계속 잤잖아. 배 안고파?”

“응…. 근데 잠깐만. 학연아, 잠깐만 이렇게 더 있자. 잠깐만….”

“…그래. 잠깐만 이렇게 더 있자.”

“…….”

“뭐 잠깐이 아니어도 좋고.”




그게 평생이면, 나는 더 좋고.














fin. 20170629


2017 엔총웹진 ‘연서戀書’에 참여한 글입니다.

http://www.sweet-nnnda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