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scene

하나하키

2017. 7. 19. 20:28















선배는 요니를 아주 오랫동안 짝사랑했고 동시에 하나하키 병 또한 아주 오래 앓고 있었어. 매일 꽃을 토하느라 손으로 입을 막고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니까 요니는 그러니까 술 좀 적당히 마셔, 하고 잔소리를 하지. 선배는 그냥 씁쓸히 웃고 말아.



“그냥 고백해 보는 건 어때? 차일 줄 뻔히 알면서도 하는 그런 고백도 있잖아.”

“받아줄 수 없는 마음을 받는 건 차라리 짐이야. 차학연한테 짐을 지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너도 이제 좀 편해질 때 되지 않았냐? 벌써 몇 년 째야, 이게.”

“나 편하자고 형한테 내 마음 떠넘기는 짓 절대로 안 해. 못해, 나는.”

“하여튼 이홍빈. 얼굴 값 지지리도 못하는 등신새끼.”



비어있는 잔에 술을 따르면서 욕을 하는 재환이를 보면서도 선배는 그냥 웃고 말아. 목으로 넘기는 소주가 오늘따라 너무도 썼어.


근데 선배가 매일 숨 쉬는 것만큼 자주 토하던 인동초를 어느 날부터는 그 횟수가 점점 줄어줄기 시작했어. 꽃을 토할 때 찢어질 것처럼 아프던 목과 가슴도 그리 많이 아프지 않게 된 거야.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했던 불면증도 점점 나아지고 있었어.


요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는 건 여전한데 꽃을 토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드니까 선배도 그게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이건 또 새로운 증상인건가. 하지만 곧 그건 요니에 대한 자기의 마음이 점점 무뎌져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 요니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었고 또 그걸 바란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 오랜 짝사랑이 나도 서럽고 지겨워서 이제 점점 무뎌지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지.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어.


그렇게 오랫동안 마치 열병을 앓듯이 참 지독하게도 좋아했는데. 시간 앞에서 빛바래지 않는 마음이란 건 결국 없는 거구나. 이렇게 무뎌지고 말 것을 난 왜 그렇게 목을 맸을까. 순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해일처럼 밀려와서 선배는 잠시 울었어. 제 처지가 너무 처량하고 오랫동안 소중히 품어온 그 마음이 꽃도 피워보기도 전에 이렇게 져버리는 게 너무 불쌍하고 서러워서. 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꽃을 토했지. 꽃을 토할 때마다 올라오는 통증들은 지금의 서러움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어.


선배가 꽃을 토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고통도 줄어드는 이유가, 사실은 그 마음이 무뎌져서가 아니라 요니가 선배를 점점 남자로 보기 시작해서 그런 거였어. 하나하키 병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거나, 혹은 그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거나. 선배는 후자 쪽이었어. 요니가 더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선배는 오히려 괴로웠어. 자꾸 희망고문 당하는 기분이었지. 괜히 기대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해졌어. 내 병을 낫게 해줄 게 아니라면 제발 날 보면서 그렇게 웃지 말아요. 차라리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


암튼. 고백은 요니가 먼저 했으면 좋겠다. 선배는 그 고백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정말 숨도 못 쉬게 울었으면 좋겠다. 지독한 열병 같은 그 오랜 짝사랑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라 뭔가 보상을 받는 기분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게 만약 꿈이면 어떡하나, 잠에서 깨면 나는 또 얼마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까, 그런 두려움도 막 들고. 정말 만감이 교차하겠지. 요니는 고백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아이처럼 계속 울고만 있는 선배를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키를 맞춰 앉아 선배의 숙인 머리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어.



“…홍빈아, 내가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내가 재고 따지고 겁내고. 그렇게 내빼기만 하는 동안 네가 너무 지쳐버려서 날 좋아하는 걸 그만두면 어떡하나. 그게 그렇게 겁나더라. 나 진짜 나쁘지.”



요니는 사실 선배의 마음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선배를 동생이 아닌 남자로 보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됐지. 무언가에 싫증을 잘 느끼는 선배가 자기한테 품은 그 마음 또한 그냥 지나가는 마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몇 년 째 변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만 보면 떨려서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구는 그 날것의 애정에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어.


얘가 이렇게 멋있었나. 얘가 이렇게 남자다웠나. 그렇게 시작된 마음은 어느새 얘가 나를 이렇게 아무런 기약도 없이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만 지쳐버려서, 어느 날 갑자기 날 좋아하는 걸 그만두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까지 갖게 만들었어. 고백을 하는 것에 대해 내게 자기의 짐을 떠넘긴다고 생각할 선배를 너무 잘 아는 요니는 결국 먼저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



“이제 그만 울고 나 좀 봐 줄래. 나 다리 아픈데.”

“어차피 꿈이니까 마음껏 누리라는 그런 소리 할 거면 나 진짜….”

“그래, 너 진짜 뭐.”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몰라. 나한테 잔인하게 그러지마. 당신 마음 나랑 같기를 욕심낸 적 한 번도 없으니까. 꿈에서라도 나한테 그렇게 굴지 마, 제발….”



요니는 이 사랑스러운 남자를 어떡해야 하나 싶어. 내가 너무 좋아서 고백까지도 꿈이면 어쩌나, 두려워서 고개조차도 못 들고 우는 이 남자를 어떡해야 해.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잔인했다는 생각도 들어. 생각해보면 자기의 마음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법인데. 내가 아주 오랜 사랑이었을 그 마음을, 내 맘대로 그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호기심쯤으로 치부해 버린 게 정말 너무도 미안했어. 그래서 이젠 확인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도 네 마음과 같다는, 그 확신을 줘야겠다고.


요니는 선배의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서 들게 만들었어. 여전히 눈물로 젖어있는 그 얼굴을 잠시 가만히 들여다봤어. 그리고 천천히 입 맞추고, 아랫입술을 한번 꾹, 깨물었지. 그리고 또 다시 달래주 듯 깨문 아랫입술을 혀로 살살 쓸어주고 쪽, 소리를 내면서 입술을 떼었어. 요니는 얼마나 놀란 건지 감지도 못하고 잔뜩 동그랗게 커져있는 선배의 눈이 그저 귀여웠어.



“어때?”

“……어? 어…”

“깨무니까 아프지? 이제 꿈 아닌 거 알겠지?”

“…아니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한 번 더 해보자.”



선배는 요니를 다시 끌어당겨 더 깊게, 깊게 입 맞췄어. 요니는 웃으면서 그 키스에 기꺼이 응해줬지. 키스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