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scene

여름 날 홍차

2017. 9. 16. 02:14














요니는 지독한 여름감기에 걸려서 하루 종일 침대에 죽은 듯 누워있어. 열에 들떠서 끙끙 앓기도 하고 그러다가 까무룩 잠들기도 하고. 또 다시 깨어나서 겨우 물 한 모금 넘기고 또 다시 누워있고. 요니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에어컨은 강제로 휴식 중이야.


선배는 그런 요니가 너무 걱정되는데 출근은 해야 하고. 오늘따라 너무 출근하기가 싫었어. 선배가 괜히 걱정하는 게 싫어서 요니는 빨리 늦기 전에 출근하라고 하는데 사실 선배는 다 알고 있지. 지금 자기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는 거. 그리고 그걸 선배가 이미 눈치 챘을 거란 걸 요니도 아니까 더 빨리 선배를 보내야 했어. 사람이 늘 예쁜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항상 예쁘게만 보이고 싶은 그런 애인인데. 지금의 모습은 좀 많이 부끄럽단 말이야.


지금 나가지 않으면 정말 지각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됐을 때쯤에 선배는 겨우 현관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어. 요니 이마에 얹어둔 물수건도 새로 시원하게 갈아주고 잠에서 깨면 바로 마실 수 있게 침대 협탁에 물병이랑 컵도 잘 놓아두고. 요니가 감기 옮는다고 입술은 절대 안 된다고 했으니 선배는 아쉬운 대로 요니 이마에 키스를 해줬어. 자기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요니 좀 돌봐달라고 상혁이한테 연락 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 현관문을 닫고 주차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너무 무거웠어.


퇴근 시간까지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선배는 하루 종일 혼이 나가 있었어. 심지어 다른 직원들까지도 이팀장님 오늘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어볼 정도였어. 선배는 급하게 업무를 마무리 하고 서둘러 집으로 차를 몰았어. 급할수록 운전 조심히! 천천히 와야 해! 요니가 늘 하곤 했던 당부의 말을 그 와중에도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썼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도어락을 해제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집 안이 너무도 적막해. 매일 먼저 퇴근해서 우리 콩이 와써! 오늘 우리 맛있는 거 해먹자! @.@* 하고 반겨주는 뱁새가 없으니까 너무너무 적적하고 허전해. 요니가 잠든 침실의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보니 요니는 여전히 자고 있어. 그래도 물병의 물도 다 비우고 죽이랑 약도 잘 먹었어. 아 흑돼지 착하다.


선배는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수도꼭지의 레버를 냉수 쪽으로 최대한 돌려 아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어. 사실 선배는 한여름에도 약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 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더워도 차가운 물로는 샤워를 잘 못하는 편이야. 그래서 지금 온 몸으로 떨어지는 냉수가 선배한테는 너무 차가웠어.


샤워를 마친 선배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속옷만 입고 요니가 있는 침실로 들어가. 그리고 잠든 요니의 이마에 자기의 이마를 맞대고 열을 체크해. 아직 열은 다 떨어지지 않았어. 걱정되는 마음에 길게 한숨을 한번 흘려보냈어. 선배는 그대로 이불을 걷고 요니의 옆자리로 들어가 아직 뜨끈한 요니의 몸을 가까이 끌어당겨 안았어. 뜨끈하고 부드러운 몸이 틈 없이 착 감겨왔어. 오늘 하루 종일 긴장하고 피곤했던 몸이 그제야 노곤하게 녹는 기분이야.



어....홍빈이 왔네에...?

응, 나 왔어. 죽 다 먹었네? 좀 괜찮아?

으응...약도 아까 먹었어...

응, 잘했어. 착해 착해.



아직 아프기도 하고 잠결이라 대답하는 말들의 끝이 한껏 늘어져서 귀여운데 기운이 없어보여서 선배는 또 마음이 안 좋았어. 요니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선배의 차가운 몸이 직접 닿아오는 게 시원하고 좋아서 선배에게 더 가까이 몸을 붙여왔어.


열이 빨리 떨어지라고 차가운 수건으로 요니의 몸을 닦아주고 싶은데 그러면 요니가 너무너무 추워하니까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선배는 차라리 자기의 몸을 차갑게 만들어서 요니의 열을 식혀주는 쪽을 택했어. 사실 차가운 물로 샤워할 때 좀 힘들기는 했지만 흑돼지는 하루 종일 열에 들끓어서 더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고작 이 정도도 못 하겠냐, 그런 마음이었지. 그리고 그걸로 인해 요니의 열이 떨어진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


요니는 선배의 몸이 시원하기도 하고 또 익숙한 체향이 콧속 가득 들어차니까 기분이 좋았어. 또 묘하게 안도감마저 들었지. 오후에 상혁이가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기는 했었지만 사실 보고 싶었거든, 하루 종일. 나 아프니까 옆에 계속 있어달라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어. 지금 열 나고 땀도 흘리고 얼굴도 많이 부어서 못생겼지만. 이런 모습들마저도 다 예뻐해 달라고 아이처럼 투정부리고 싶었어. 그리고 선배는 요니가 그 모든 것들을 다 말하지 않아도, 어쩐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



빈이 지금 여름이다아...되게 시원해...

어, 흑돼지도 지금 여름이다. 되게 뜨거워.

시원해...홍비니 좋아...

좋아? 그래, 그럼 나도. 나도 형 너 뜨거워서 좋아.



난 홍차 하면 아주 뜨거운 여름이 생각난다! 그니까 여름날의 홍차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