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scene

Hate You

2014. 10. 19. 23:35



정택운

차학연









나는 누군가의 어떠한 상처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전부 다 이해하는 것처럼, 모두 다 자신이 껴안으려는 그런 사람이 싫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사람이 쌓아놓은 견고한 벽을 허물어뜨리고 자신에게 의지를 하도록 만들고 나면 단단하게 맞물려 있던 그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는 기쁨에 도취 된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상대가 나에게 부딪혀 오는 그 것들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분명 감정적으로 버거움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국은. 잡아오는 손을 야멸차게 뿌리치고 달아나려 하게 된다. 그저 누군가의 상처를 모두 끌어안은 자신의 그 모습이 좋았을 뿐 그 것으로부터 상대를 구원해 줄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어둠 혹은 외로움을 보고 도저히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 단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지극히 본인의 입장만을 생각한 아주 이기적인 변명이다. 자신의 그 어쭙잖은 위로 따위가 상대에게는 무섭도록 몸집을 불리는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붙잡아야 할 동아줄이 될지도 모를 텐데. 그 도가니 속에서 건져내 줄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모르는 척 하는 게 낫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차학연 같은 사람들을 아주 잘 알았다. 모든 사람에게 애정을 넘치도록 흩뿌리고 다니며 그 누군가의 고민과 시름을 모두 다 자신이 끌어안고 또 거기에서 따라오는 우울함까지도 함께 떠안아 버리는 그 멍청하도록 물러터진 심성. 그러다 자신이 먼저 지쳐버리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되어 결국 서로에게 더 지독한 상처만 남게 될, 그런 관계. 차학연은 누군가로부터 떠안은 우울로 점철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어린애 같았다. 나와는 본질부터가 다른,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차학연이 싫었다. 


수년 동안 누군가와의 소통으로부터 내가 나를 방치하고 방목함으로써 견고하게 쌓아올려진 벽을 자꾸만 허물으려 하고 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차학연이 거북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녀석을 더 아프게 찔러댔는지도 모르겠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이쯤이면 그만두겠지.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차학연은 눈초리를 축 늘어뜨린 채 마치 상처라도 받은 것 마냥 어린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또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잔뜩 휘어 웃어 보인다. 그리고 남은 수업 잘 들어 운아, 하고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내 앞을 떠난다.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것은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차학연의 수많은 행동들 중 하나였다.


말없이 가만히 나를 보고만 있던 그 잠깐 동안 차학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도 그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상상을 어떻게 자기 멋대로 부풀리고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거듭 될수록 속이 체한 듯 불편해졌다.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려 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차학연과 마주친 날이면 어김없이 하루 종일 이 상태가 되어버린다. 다음 수업이 몇 시였는지 기억을 더듬다가 그냥 제끼기로 했다. 기분이 끝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쳐 도저히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차학연만 보면. 왜 차학연만. 




차학연이 싫다. 일말의 경계심도, 의심도 없이 온전히 온 마음을 다해 나에게 부딪혀 오는 차학연의 그 견고한 순수함이, 나는 끔찍하다.